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고급지다. 원하지 않는 발성이 섞이지 않아 군더더기 없는 음을 낸다. 기름기를 뺀 담박함이 전하는 청아함은 마치 조선의 백자 혹은 고려의 청자를 마주하는 듯 귀하다. 그리하여 청자에게 깔끔하고 우아하며 형용할 수 없는 음색으로 다가간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아름답다는 말로는 많이 부족한 그 어떤 느낌을 자신의 음색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 박혜상이다. 경계를 넘은 차원의 고귀한 발성이라고 말한다면 적절한 말인지 이 또한 잘 모르겠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요소가 없는 깔끔함은 익숙함 혹은 기나긴 친숙함에서 오는 반작용을 그야말로 아주 아주 오래도록 반감시킨다.
박혜상은 성악 스타의 등용문으로 이름난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성악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2015년의 일이니 벌써 10여 년 전이다. 국내 성악인으로서 이름이 드높은 베이스 연광철이 93년 우승한 바 있는 콩쿠르이기도 하다. 연광철이 그 어떤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냈는지 잘 알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잠시 삼천포로 빠져 최근 뉴스를 보면, 한국인 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주문 한지 70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아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매장을 떠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런 약점아닌 약점을 가진 박혜상에게 2020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이 전속 계약을 맺읍시다, 하고 손을 내민 것이다. 이는 아시아 소프라노로서는 처음있는 일이다. 처음은 늘 있는 것이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그 처음이 찾아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적 같은 처음이 박혜상에게 일어난 것이다.
도이치 그라모폰 전속이 뭐 별거냐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그렇지가 않다. 현존하는 세계 정상 톱 3에 든다는 조수미도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을 맺은 적이 없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문을 열어 제치려면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이 우선이다. 차원이 다른 실력을 시전해야만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전속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실 조수미가 애초에 카라얀(Karajan)을 매료시키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조수미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수미는 동양인이니 말이다.
조수미는 사실 인종차별의 벽을 수없이 깨트린 인물이다.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니는 대가인데, 주요 경력을 찾아보면
동양인 최초 세계 7대 콩쿠르 석권
동양인 최초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프리마돈나
동양인 최초 그래미 어워드 최고 음반 상
동양인 최초 황금 기러기 상
비 이탈리아인 최초 국제 푸치니 상
이탈리아 기사 작위 (조수미는 귀족이다)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 등 등 어마어마한 업적을 가지고 있는 현존하는 전설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쿠르는 알다시피 파바로티나 플라시도 도밍고 정도의 인지도를 가져야 가능한 이야기고, 특히 서양인 이어야 한다. 이런 전설을 써내려 갔지만 도이치 그라모폰은 조수미에게 전속 계약서를 내밀지 않았다.
(참고로
카라얀은 흑인 소프라노 레온틴 프라이스(Leontyne Price)에게 프리마돈나의 영예를 부여했던 지휘자 이기도 했다.)
인종 차별이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성악가 James Wagner 이다. 실력으로 라면 단연 최고의 반열에 오른 제임스 바그너를 연주에 초청해준 지휘자는 오직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 와 카를 뵘(Karl Bohm) 뿐이었다. 그 수 많은 지휘자들이 그토록 유능한 제임스 바그너를 모두 외면했던 것이다.
(카를 뵘에 대하 추가하자면 그는 제임스 바그너를 초청해 베르디 레퀴엠이라는 대작을 연주했다. 또한 카를 뵘은 흑인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 Barbara Hendricks의 능력을 인정하고 초청해준 지휘자이다.)
제임스 바그너는 월등한 능력자, 즉 100 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내는 강력한 협음과 100 여 명에 달하는 Choir의 합창을 뚫고 빼어나듯 솟구쳐 나오는 또렷한 자신의 성량을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 해내는 능력자이다. 자신 이외의 거대한 소리에 뭍히는 것이 이상할게 없는 연주에서 말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청중이 자신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하는, 정녕 대가의 반열에 오른 테너가 바로 제임스 바그너인 것이다.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제임스 바그너가 바로 이러한 능력자라는 것을 잘 보여준 명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바그너는 젊은 나이에 잊혀져갔다. 오래 전 유투브에 존재했던 마주어와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장면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흑인이었던 것이다. 사라져야할, 있어서는 안될 것 중 하나가 인종차별이지만 현실은 늘 그와 마주한다. '김연아의 유일한 약점은 그녀의 조국이 대한민국 이라는 것' 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박혜상도 이런 피할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소프라노이다. 그녀는 아쉽게도 아시아 인이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니 말이다. 학사까지 모두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대학원만 맨하튼에 있는 줄리어드에서 공부했다. 대한민국 토종인 셈이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서양인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면 어느 방면에서든 한 수 접고들어가야 한다. 이런 서양인들의 우월감은 도이치 그라모폰이 조수미에게 조차 손을 내밀지 못하게했다. 그런 도이치 그라모폰이 박혜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박혜상이 어떤 능력자 인지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