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김영하도 여행 책을 썼다.
<거울에 대한 명상> 시절부터 아무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의 글을 열렬히 탐독해온 나이기에, 그의 '여행' 소식에 마음이 서늘해지기부터 하는 것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김영하는 그래선 안 되었으니까. 여느 '글쟁이'들처럼 관광지와 맛집을 소개하고, 음식 사진을 찍고, 여행의 로망 운운해선 안 되었으니까. 누가 들으면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반문하겠지만, 그리고 <여행자>라는 제목만 들은 사람들은 으레 그런 식의 책을 기대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그저 소설 속의, 소설 뒤의, 소설 너머의 김영하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오랜 고집 같은 것이었다.
햇살이 쨍-한 일요일 아침, 배달되어온 책을 받고서-소설을 읽고, 사진을 보고, 여행담과 사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드디어 음악을 감상하면서, 나는 오래 참았던 숨을 크게 한 번 내쉴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나의 고집을 꺾지 않아도 되어서. 내 기억 속의, 여전한 김영하여서.
소설 속에선, 조금 따뜻하고 넉넉하고 부드러워진 김영하를 만날 수 있었다. 조금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도 다시 한번 다행이었다. 그가 쓴 대로 "폭파해체되는 빌딩처럼"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매번 무너져내려야 했으니까. 이제 나도 그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김영하에게 위로라니, 나도 이제 정말 나이를 먹는가보다.
그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을 하나씩 넘겨 보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곳이 어디인지, 무엇으로 유명한 곳인지, 김영하는 그곳에서 무얼 했는지, 좀체 알 수가 없었지만, 돌바닥 위에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과 유령 같은 사람들의 실루엣 사이의 간극에서 무얼 읽어야 할지 쉽게 답을 낼 수는 없었지만,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두껍지 않은 책을 거듭 넘겨보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에, 사진 속에,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김영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오롯이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가 숨쉬고 있음을. 그리고 이제는 너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손짓하는, 많은 것들의 그림자가 행간을 넘나들며 천천히 유영하고 있음을.
내 기분도 몰라주고 아침부터 샛노란 초여름의 월요일, 깨어나자마자 음반을 걸고 소리를 높였다.
눈앞에 애잔한 하이델베르크의 풍경들이 펼쳐졌다.
소설 마지막 문장이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며,
어느덧 눈물나게 화려한 나뭇잎 사이 햇빛이었다.
어느덧 가슴 울렁이는 새벽녘의 강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