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은 총 1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작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메인 PD이다. 그래서 더욱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아 읽기도 전에 기대가 컸다. 작가는 어느 정도 실화를 기반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각기 다른 열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냥저냥 무난한 이야기도 있는 반면, 충격적이면서 엽기적인 이야기도 있다. 나에게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가 맨 마지막 작품에 해당되었다. 제목이 ‘가해자 H의 피해 일지‘인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가해자인데 피해 일지라니! 평범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30대 우체부 남성은 어느 봄날에 늘 다니던 교회에서 운명의 여자와 만난다. 그녀와 깊이 사랑에 빠졌고 동거를 하기에 이르지만 그녀는 결혼만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뭔가 이상했지만 남성은 그녀를 사랑했으므로 덤덤히 그녀 곁을 지킨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매일 아침 우편 등기가 오고 있고, 그녀 역시 매일 누군가에게 우편 등기를 보낸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인플루언서인 그녀에게 SNS로 악플을 남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날리고 협박하며 보상을 받고 있었다. 남성은 묵묵히 그녀를 도우며 어느샌가 같이 그녀와 함께 보상금을 받는 기쁨을 누리고 재산이 늘어가는 걸 즐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녀가 만취한 사이에 그녀의 핸드폰과 경찰서 사이트에 몰래 접속해서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아버리고 그는 패닉에 빠진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속이고 뒤에서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다면 어떨까.
나는 요즘 OTT로 크리미널 마인드를 시즌 1부터 보고 있다. 그래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왔을 때 무척 흥미로웠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도 하고 주변 지인 중에도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으로만 봤을 뿐. 하지만 소설 속 여주인공에게 프로파일링은 그냥 덤덤한 루틴이다. 범죄 현장 속 사진과 서류상의 기록만 보고 범인을 유추하고 브리핑하는 것인데 매번 운 좋게도 그녀가 말한 대로 용의자가 좁혀지고, 주위에서는 그녀를 치켜세운다. 비법은 따로 없다. 그냥 임기응변에 강한 것이 장점일 뿐. 그녀는 사건 해결을 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헤어지자는 남친의 문자를 받고 분개한다.
삼십대의 인턴기자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부투하는 이야기도 있다. 대학교수가 여제자를 성추행한 사실을 알고 이 일을 기사로 낼지 고심한 끝에, 피해자 가족들과 출세를 위해 기사를 내버리고 만다. 정규직이 되긴 했는데 결국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교수쪽 변호사가 제기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씁쓸한 결말.
소설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소설을 읽고 비슷한 일을 겪은 누군가는 씁쓸해 할 것이며,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며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욕망과 어두운 내면이 고개를 들고 발현되었을 때 불행이라는 것이 어김없이 쫓아오는데 이것을 인지할 때쯤이면 이미 늦는다. 그래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불행만을 논하고 있지 않다. 인생의 밑바닥을 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우연한 일을 계기로 행운을 거머쥐고 역전하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돌이켜보면, 불행이라고 여겼던 일이 의외로 행운으로 작용해 좋은 쪽으로 흘러간 적이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나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언젠가 그 불행의 씨앗이 나에게 날아온다는 서늘한 교훈을 남겨주는, 정신이 번쩍 드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