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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공쥬님의 서재
  •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 기리노 나쓰오
  • 16,200원 (10%900)
  • 2026-03-25
  • : 3,63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를 ‘아웃‘이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아주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고,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의 여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 소설 또한 ‘아웃‘에 뒤지지 않는 사회적 논쟁이 될 수 있는 소재라는 것과, 뒤통수를 치는 아찔한 결말에 역시 기리노 나쓰오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이름을 외울 수 있을 만한 개성있는 중심 등장인물 몇 명, 사회적으로 불편한 부분을 건드려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소재, 예측할 수 없는 결말. 이 삼박자가 제대로 어우러져 가독성은 물론,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결말이 궁금해서 초조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리키는 인구가 5천 명도 안 되는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도쿄로 상경한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다. 도쿄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서 언제까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비싼 도쿄 물가와 생활비에 허덕이며 생활고에 시달린다. 요시코 이모가 돌아가셨지만 고향으로 갈 차비조차 없고, 매일 편의점에서 값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이 지긋지긋해져 그녀는 고심 끝에 난자 제공을 해서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업체에서는 리키에게 난자 제공을 넘어서 대리모를 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한다. 대리모의 경우, 단순히 난자 제공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과 함께.


리키가 대리모를 선택했다는 점이 가장 비극적이다.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로 내린 결정이지만, 이 대목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선택을 과연 진정한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사회는 개인의 절박함을 거래로 정당화하며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자본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끝단을 목격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고 싶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유전자, 자궁,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미래까지도 철저하게 계산된 비즈니스 플랜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의뢰인 부부의 남편인 모토이는 이것을 프로젝트라 지칭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급급하다. 생명을 잉태하는 숭고해야 할 행위가 비즈니스나 프로젝트라는 차가운 경제 용어로 치환되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은 숫자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윤리적인 시점에서 벗어나, 리키의 아이가 과연 누구의 아이인지도 너무 궁금하다. 기리노 나쓰오는 끝까지 명확한 친부 확인 검사 결과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을 아주 지독한 궁금증 속에 남겨둔다. 굳이 친부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누구의 아이인가보다 누구의 아이여도 상관없는 시스템의 비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리키는 결국 누구의 아이인지 확인하기보다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길을 택한다. 이는 아이를 누군가의 소유물로 확정 짓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아이로서 마주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통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요즘은 이처럼 열린 결말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제비는 해마다 둥지를 틀 곳을 찾아 돌아오지만, 현대 사회의 가혹한 자본 논리 속에서 리키 같은 인물들에게는 돌아갈 따뜻한 집이나 안전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단정적인 표현은 생명조차 거래의 대상이 되는 비정한 현실에서 감상적인 구원이나 해피엔딩은 없다는 작가의 냉철한 시선을 반영한 것이겠지. 어쩜, 책 제목을 이렇게 찰떡같이 지었을까. 역시 기리노 나쓰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추악한 욕망이나 치졸함이 미화 없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그 날것의 서늘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과연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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