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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공쥬님의 서재
  • 제로섬
  • 조이스 캐롤 오츠
  • 17,100원 (10%950)
  • 2025-09-17
  • : 63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려 열 두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이다. 내가 방금 뭘 읽은 건가 싶게 아주 짧은 이야기도 있고,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읽어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첫 번째에 실린 제로섬 작품이 상당히 인상 깊다. 교수님의 집에 초청을 받은 여제자가 그 집에서 교수의 딸을 맞닥뜨리고 그 딸과 나누는 대화가 무척 흥미롭다. 왜 이렇게까지 그 교수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바라고 이러는게 아니라는 점이 더 독특했고,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교수에게 각인시키지 못해서 안절부절하며 전전긍긍하는 제자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결국 교수의 어린 딸에게 일격을 가하고 통쾌해하는 여제자.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화자가 대부분 여자이지만, ˝상사병˝이라는 작품은 남자가 화자이다. 스토킹 혹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한 여자의 넋두리를 듣고 있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이 여자를 사랑한다. 다소 수동적이고 남자에게 예속되어 있는 듯한 여자이지만, 남자와의 대화로 보았을 때 그녀의 행동은 여유가 있고 그리 급박한 상황도 아닌 듯하다. 경찰에 신고해 봐도 별 반응이 없었다고,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는 눈치라며 조용한 분노를 내뿜으며 체념에 빠진 여자. 제목이 스토킹이 아닌 ˝상사병˝이라는 것이 무척 흥미롭지 않은가. 남자가 여자의 남편도 아니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이면서도 불안한 여성의 내면이 잘 나타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기˝라는 작품은 세 번째 아이를 유산한 여자의 자책감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두 아이와 남편이 있음에도 유산이라는 기억에 얽매여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한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연구원인 남편이 자신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한 여자는 끝내 집을 나오게 된다. 그녀는 환상 속에서 예전의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유산으로 잃어버린 딸을 꼭 끌어안으며, 드디어 한기의 소굴을 알아냈다고 안도한다. 여자의 근본적인 불안과 슬픔이 소멸되지 못하고 자꾸만 팽창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작품이다.


˝자살자˝라는 작품은 단편작들 중에 제일 재미없게 읽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어느 촉망받는 소설가의 음울한 자살 계획 이야기. 몇 번이나 자살에 실패하고 병원에 실려오고 그 와중에 아내 탓을 하는 꼬라지라니. 심지어 자살 후에 들려올 추문이나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는 꼴이라니. 그냥 빨리 죽어버려.

˝베이비 모니터˝만큼 엄마와 아이의 유대 관계에 대해, 정확히는 엄마가 아이에게 갖는 집착이 잘 드러난 작품이 있을까 싶다. 이것은 집착을 넘어선 공포랄까. 모니터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을 넘어서, 자칫하면 아이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공포가 그녀를 덮친다. 그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가진 아이지만 출산 후에 변화한 자신의 체형이라든가,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과의 변화된 관계라든가, 시어머니와의 불화 따위 등등. 모든 이유와 원인은 차고 넘친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햇살 속으로 나가, 베이비 모니터라는 존재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괴물둥이˝는 흡사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한다. 갑자기 머리에서 솟아오른 혹은 분명히 불청객이었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어 이 집의 딸 행세를 하다니? 심지어 이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묵인과 허용으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심지어 가족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는 점이 카프카 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이 이 작품의 반전이다.

모든 작품이 강렬하면서도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일어난 사실이나 서사보다 각 인물들의 내면이 변화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현실적으로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그 끝에는 휴머니즘이라는 작가의 유토피아적 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인 것 같다.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측은하고도 약한 본성이 어떻게 강하게 변화하고 발현되는지 작품 하나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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