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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공쥬님의 서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는 것. 생판 남에게 그 일을 겪는 것과 피가 섞인 형제에게 당하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아끼고 보듬어 주어야 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본주의 아래 참상의 비극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담은 한 편의 소설을 만났다.

8남매 중에 장남이었던 형일과 둘째였던 형남, 셋째 형구. 이들은 집안에서 큰 형 뻘이다. 장남인 형일이 가출을 하고 아버지 상준이 형일을 힘들게 찾아내고, 돈을 벌고 싶었던 형구가 형일과 형남의 도움으로 포장마차를 하는 등 그래도 이때까지는 보통 집안의 형제 사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집안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형남이 석사 학위를 받겠다고 미국 땅을 밟지 않았다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형구는 형제 중에도 내심 형남을 의지하며 형남의 뒷바라지를 한다. 형남이 석사 학위를 따고 한국에 귀국했을 때도 결혼식 비용을 대주었다. 어머니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홀로 도맡아 하며 형일이 알코올중독자로 생을 낭비하고 있을 때에도 형남이 어서 박사학위를 따서 자신의 짐을 덜어주기를 바랐다. 공무원이 된 막내 형민이 방황하며 주식과 도박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다른 형제들은 모른척했지만 형구와 그의 아내 미현은 끝까지 형민을 돌보았다.


실상 셋째인 형구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욕심이 없는 인물로, 총명하고 사업 수완도 좋았다. 가난해서 제대로 받지 못했던 교육을 혼자만의 힘으로 검정고시 패스, 대학과정, 영어회화까지 마스터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산의 많은 부분을 힘들게 살고 있는 형민에게 주자고 할 때마다 형남과 대립하지만 꿋꿋이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풍족하게 살고 있는 형제보다 당연히 어렵게 살고 있는 형제를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말이다. 이미 미국물을 먹고 자본주의와 금융업에 눈을 뜬 형남은 돈맛을 알아버렸고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본인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형구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형제자매를 도왔던 형구는 타고난 성정이 올곧고 마음 씀씀이가 넓었다. 그들에게서 자신의 공을 인정받기 위해 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형제 자매들은 그를 배신하지 말았어야 했다. 형제 중에 특히 자신을 따르고 믿었던 형호에게 동업 계약서를 써주고 회사의 모든 실질적 행사권을 넘겼지만 결국 형호마저 형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형구는 회사를 빼앗기고 만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행동들과 발언들이 남일 같지 않은 건 이미 나의 과거 주변 사람들과 지인들이 겪었거나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것이다. 돈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인간의 탐욕과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이렇게 사실적으로 세세하게 묘사하다니 씁쓸하다. 하지만 각 등장인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인간의 가치관과 신념은 각자 다르니 무조건 형구가 옳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반부는 예상했던 대로 형구가 회사를 다시 찾으려고 재기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왜 형구가 몽골에 가서 고생을 사서 하나 했는데 그에게는 빅 피처가 있었다. 회사를 다시 찾고 형남에게 복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형구를 믿고 따랐던 임원들과 인맥들 덕분이었다. 형구가 형남에게 한 복수는 솔직히 통쾌했지만 혈육관계에서 저렇게까지 하는 형구의 마음을 헤아려봤을 때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소설의 결말은 허망하다. 형구는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결국 자신이 했던 복수가 자신을 찌르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음을 깨닫고 그는 삶의 원동력을 잃고 포기할 자유를 얻는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달려온 삶이었지만 그 많은 돈도, 명망 높은 회장님이라는 호칭도 모두 부질없다고 느꼈던 것이리라. 이러한 류의 소설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욕심만큼 무서운 것은 없구나 느낀다. 돈보다 중한 것이 많지만 우리 모두는 돈을 좇는 삶을 살고 있구나. 돈은 사람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하며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구나. 돈 없고 가난했지만 형제간의 우애가 좋았던 그날로, 형구는 몇번이나 그날로 돌아가고 싶었을것 같다. 다시 형구가 옛날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형제들 뒷바라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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