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고양이의 인간세상 구경
몽키공쥬 2025/04/2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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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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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눈길을 끄는 이 책. 오래전에 나온 책임에도 워낙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소설이라 현재까지도 여러 출판사에서 계속 번역되어 나오는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위, 벽돌 책이다. 표지에는 고양이가 어두운 계열의 한복을 입고 므흣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서 손자국을 찍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의 외모와 행동들을 보았을 때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주인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 이름 없는 고양이는 심심할 틈이 없다. 주인집에 여러 손님들이 오는데 그 손님들이 주인이랑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식견도 상당하고 눈치도 빠른 고양이라서 주인이나 다른 손님들이 빙빙 돌려서 하는 말이나 어처구니없는 말에 어이없어하거나 황당해 하기도 한다.
나는 특히 주인집에 찾아오는 손님 중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지는 메이테이 선생이 재치 있고 유쾌한 사람이라서 좋다. 어떨 때는 황당무계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이야기의 핵심을 잊은 채 본론에서 벗어나 아무 말이나 꾸며내는 만담꾼 같다. 하지만 주인이랑 티키타카 가볍게 툭툭 던지는 말이나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도 뼈가 있어서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데 이렇게 말을 재밌게 하는 건지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고양이도 메이테이 선생이 집에 오는 것을 내심 반긴다.
주인집은 마치 사랑방처럼 메이테이와 간게쓰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조언을 구한다고 불쑥 찾아오거나 안부차 들려서 주인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이들 중 메이테이 선생 못지 않게 엉뚱한 인물은 간게쓰군이다. 이학자인 간게쓰군은 목매기의 역학 연구라든지 유리구슬을 갈면서 실험에 진지한 열의를 보이는, 시종일관 성실하고 바른 인물이다. 간게쓰군을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 건지 가네다 부인이 간게쓰군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싶다며 주인집에 들른 후에 주인과 메이테이 선생이 가네다 부인을 코마님이라고 칭하며 시를 짓는 장면은 정말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현웃이 터졌다. 주인과 손님들은 가네다 부인이 저러는 이유는 필시 간게쓰군의 박사 학위를 바라고 저러는 것이라고 간파하고 얄밉게도 끝까지 가네다 부인이 바라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가네다 부인은 스즈키군까지 매수하여 계속 간게쓰군의 뒷조사를 하지만 결국 간게쓰군은 다른 여인과 혼인을 해버리고 만다. 가네다 부인 혼자 헛물을 켜고 있던 셈이다. 주인과 손님들은 가네다 부인과 그 집주인을 들먹이며 끝까지 욕한다. 사실 가네다 집은 돈을 굴리는 사업자 집안이고 주인은 수입이 변변치 않은 영어 독해 선생님이 직업이다. 가네다 집안뿐 아니라 주인의 옛날 친구들도 샌님같은 주인집을 무시하면서 사업을 해보라느니 언제까지 교사 노릇이나 하고 있을 거냐면서 충고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고양이 눈에 주인은 유유자적,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것 같다. 주인 역시 큰 욕심이 없는 사람으로, 남들이 뭐라든 마이웨이 방식으로 친구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농담을 하고 골려 먹고 가네다 집안의 코마님을 이야깃거리 안주 삼아 지내는 것에 불만이 없는 듯하다.
책 뒷부분은 주인과 손님들이 철학적이면서도 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이자 직시해야 할 논란거리들과 맞닿아 있어서 이 책이 왜 지금까지도 고전 중의 고전, 명작 중의 명작인지 깨달았다. 나름 고등교육을 받은 학자들이 농담을 섞어 아무렇게나 떠드는 말 같지만 앞으로 세상은 차차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어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고양이가 사람들을 관찰을 하고 생각을 하고 심지어 인간들을 비웃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와 닮아 있다. 하지만 깊게 들어가서는 의뭉스럽고 어리석은 인간 군상의 면모를 들여다보고 사유하며 세상 사는 이치를 자연스레 깨닫는 과정이 한 마리 고양이의 눈을 통해 조명되다니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이야기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키득거리며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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