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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공쥬님의 서재
  • 파선
  • 요시무라 아키라
  • 14,220원 (10%790)
  • 2025-01-24
  • : 2,70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붉은색 표지와 표지에 그려진 찢어진 검은 돛대가 읽기도 전에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열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 먹을 것도 일자리도 풍족지 않은 마을이라 생선이나 소금 등을 이웃집 마을과 곡식으로 교환하며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주인공 이사쿠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보필해야 하는 집안의 가장이다. 아버지가 고용 하인으로 3년 동안 팔려갔기 때문에 이사쿠가 가장이 된 것이다.

"파도가 거친 날에는 해가 지기 무섭게 해변에 불을 피웠다."
<파선> p.46

왜 파도가 거친 캄캄한 밤에 불을 피워야 했을까. 소금 굽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행여라도 사고 난 배가 소금 굽는 불빛을 보고 이사쿠의 마을에 오다가 암초에 걸리면 배는 난파되고 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 배를 뱃님이라고 지칭하며 이제나저제나 뱃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난파된 배 안에서 획득한 쌀과 식량들, 목재 등을 촌장 지휘하에 마을 사람들끼리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이다. 뱃님이 오시는 해에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가족들 중 누군가를 고용 하인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쿠 역시 누구보다 뱃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계절이 바뀜에 따라 꽁치잡이, 오징어잡이, 문어잡이를 하면서 가장 노릇을 착실히 해 나간다. 매일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며 굶주림과 싸워야 하는 고단한 인생이지만 가족들을 잘 건사해야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떳떳하게 아버지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사쿠는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를 버틴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소금 굽는 불빛을 보고 난파된 배가 이사쿠 마을에 당도하고 이사쿠는 드디어 뱃님의 방문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배에는 쌀과 술, 목화솜, 기름 등 생활에 필요한 용품이 가득 실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고 어느 1월 말 밤에 또 배 한 척이 마을로 들어온다.

"붉은색은 경사스러운 색이다. 무언가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붉은색 옷을 입고 배에 올라탔겠지."
<파선>p.188

이번엔 파선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죽어 있었다. 시체에는 부스럼이나 두드러기 같은 흉터가 있었지만 마을 노인은 열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붉은 옷을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하자고 한다. 당시 붉은 비단은 진귀해서 마을 사람들은 고급 진 옷감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붉은색 옷과 경사스러운 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음을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야기의 끝은 비극적이고 침울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 순진하고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 굶주림을 두려워 한 나머지 난파된 배 안의 물건들을 나눠 갖고 배 안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자 마을을 지키는 방법이라서 당연히 뱃님은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붉은 비단을 싣고 나타난 배는 뱃님을 부르려고 밤에 소금 굽기를 하고, 임산부를 바다에 내보내 뱃님이 오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던 마을 사람들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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