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에 깊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간호사로 오래 근무한 분이라는 것. 제목의 인상과 저자의
직업만 가지고 내용을 대강 예측한 뒤 책을 구매했습니다. 이 에세이집은 이야기의 공간적 범위가 저자의 일터, 즉 '중환자실'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목에만 빠져,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 전체'일 줄 알았습니다. 책의 제목이 그런 착각을 제게 주긴 했지만, 책의 내용은
정직했고 내실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에세이집인데, 저는 에세이를 읽는 재미와 함께 어떤 '유용성'들을 크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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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정말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중환자실
(아마도 리더 급의) 간호사로 근무한 분이었고 그런 저자의 눈에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곧 '중환자실에서의 사망' 혹은 '중환자실을 거쳐간
사망'이었습니다. 비약이 없지 않으나, 매우 현실적인 정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유용성은 이렇습니다. 전직 중환자실 간호사의 에세이인 이 책에는 노소를 불문하고 중환자실에 당도해야 했던 다양한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대부분 가족들)이 만들어 낸 장면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제게 죽음에 대한,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생활에 대한 간접체험이
되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중환자실을 거치겠지요. 환자복을 입고 혹은 보호자로서 말이에요. 아마도 두 가지 경험을 모두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책을 독서하며 가장 유용하게 느낀 것은, 의사와 간호사의 독특한 생각구도와 업무패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간호사니 의사니 하는 직업을 가진 지인들이 있는데도, 그들이 그들의 회사에서(병원에서) 어떤 논리로 어떤 가치를 일상적으로 저울질하며
근무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직종이 다른 친구에게 직장에서의 고충이나 일상을 늘어놓는 것은 제대로 이해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그렇겠지요. 속옷까지 아는 친구래도 그 친구의 메모나 일기장을 엿보게 되면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되는데요, 그와 비슷한 걸 이
책에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길이나 눈길이 거칠고 고압적이고, 때로 쌀쌀맞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의학용어이지만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 일상어로 알아들을 줄 알아야만 하는, DNR이니 hopeless discharge가 일반인과
의료인에게 어떻게 다르게 소통되어 오해를 빚을 수 있는지도 잘 나와 있어 유용합니다. 잊고 싶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더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삽관'이라는 처치를 받으면 환자는 말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 부모나 동생의 주 보호자가
되었을 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처치에 OK 사인을 내 버릴 것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 * *
저자는 과거 예전 농경사회의 모습을 채 벗지 못했을 당시, 그러니까 약 40년 전만 해도 일상적으로 여겨지던 '(집에서 맞는)
자연스러운 죽음'의 인간성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소위 '보라매 사건'이라 불리는 법적공방 이후 병원에서는 연명치료만이 남은 환자들도 절대
퇴원시켜 주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집에서 가까운 작은 병원으로 '전원(병원을 바꿈.)' 하는 것 밖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더군요. 그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가감없이 표현한 저자는 해당 사례에 대한 새로운 판례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사람으로서 누구나 자신의 죽음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맞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저자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 죽음의 장소는 제가 정하기를 바랍니다. 병원은 아닐 거예요.
책 전체의 저변에는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은 제 자신이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확고한 소신이 깔려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저자는, 환자가 의식이 불분명해서, 연세가 너무 높아서, 혹은 보호자의 정신적 폭력(?)으로 인해 환자가 자신에게 가해도 되는
처치와, 받고 싶지 않은 처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심지어 수술까지도). 그래서 저자는 누구나 판단이나 결정이
어려운 몸상태에 불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와 같은 것을 '미리' 작성해 둘 것을 넌지시 권합니다. 미리
그런 것을 작성해 두면, 제가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몸에 큰 무리가 가는 고통스럽고 값비싼 치료를 가해 며칠이라도 더
생명의 끈을 부여잡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치료는 제발 하지 말고 나와 남은 사람들이 편할 수 있게 그저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향서가 없다면, 의사나 보호자는 단 며칠 숨을 연장시킬 뿐인 치료라도 그것을 안 받게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저도 작성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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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쪽 정도의 길지 않은 에세이집으로,
개인차는 있겠지만 네 시간 정도에 일독할 수 있습니다.
존엄한 죽음에 관심을 가진 분,
병원이라는 장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분,
앞으로 부모님을 간호해야 할지도 모르는 30-40대 성인들,
병환을 지닌 지인이 있는 분,
주변에 의사나 간호사 지인이 있는 분,
께서 읽으시면 독서한 네 시간여가 아깝지는 않을 책이라고 감히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