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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애자님의 서재
  • 어머니
  • 강상중
  • 9,900원 (10%550)
  • 2011-05-07
  • : 517

1. 마츠시마 마사아키는 나의 룸메이트였다. 그가 인사말 이외에 구사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한국어 문장은 하나 정도였다. “야이노무 자식아!” 말썽을 피울 때마다 그의 할머니가 그에게 했던 말이라고 했다. 마사아키의 할머니는 재일 1세대였다. '구정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었던 마사아키는 재일교포 3세였겠다. 《어머니》를 읽으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의 할머니가 강상중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고, 유사하게 버거운 삶을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아키와 사는 동안 가끔은 의아했다. 그를 혼내는 순간에 자연스레 ‘조선말’을 꺼내고는 했던 할머니와 달리, 왜 마사아키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답을 내렸다. 재일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상존하고, 품어줄 조국이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2. 일찍이 한국사회에서 서경식 같은 재일 ‘디아스포라’의 글이 꽤 읽힌 바 있다. 부끄럽게도 읽어본 적은 없다. 사실상 이 책 《어머니》로 재일조선인, 넓게는 디아스포라들의 사연을 처음 제대로 접한 것이다. 그들이 겪은 생활고가 같은 시기 조선 땅에 있었던 이들의 경험에 비해 더 힘들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재일에 대한 일본인들의 경멸적 시선과, 각종 유무형의 사회적 자원을 차지하는 경쟁에서 쉽게 낙오될 수밖에 없는, 단순히 물질적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는 현실까지 견뎌내야 했다. 그런 현실을 비켜가 보고자 떠나온 조국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분단, 가난과 혼란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어떻게든 힘겹게 살아내야만 하는 하나의 선택지 정도만 있었고, 많은 이들이 야쿠자가 되는 등 어두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상중의 가족 정도면 일본에서 꽤 성공한 축의 재일조선인 부류에 속하는 것일지도.

 

3. 언제부터인가 내셔널리즘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집단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느껴졌다.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민족이나 국가는 근대적 개념이며, 상상된 것’이라는 탈근대주의의 관점을 수용했다. 같은 맥락에서 내셔널리즘보다는 코스모폴리터니즘이 훨씬 우월한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엄마와 함께 ‘고려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을 때, ‘역시 뿌리가 중요하다’는 엄마의 말에 ‘뿌리 같은 게 뭐가 중요하냐, 어디서든 한 인간으로 잘 살면 되지’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었던 것 같다. 그때와 달리 뿌리 뽑힌 채 여기저기서 표류하는 난민들을 보며, 또 《어머니》라는 책을 읽으며, 허울 좋은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세계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의 전유물에 가까운 반면, 현실적으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한 인간’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국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밀양과 강정마을 등에서 국가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는 한국,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공세 앞에 안정된 국가들마저 허물어지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 하기엔 지나치게 공허한 생각일 수 있겠으나, 여전히 다른 대안적 울타리는 쉽게 상상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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