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시장자유주의가 보였던 이론적․실천적 양 차원에서의 무능을 비판한다. 대립하는 양자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중장기적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해나갔던 비그포르스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역사를 부각시킨다. 이는 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그리지만 근본적인 이념과 가치만 앞세우거나 주먹구구식 운동을 벌이는 한국의 정치세력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책을 읽다보면 경제학자 장하준이 스웨덴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사회적 대타협'같은 모델이 한국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을 중시하는 진보적인 사민당 정부에 자본가들이 협조했던 것은 스웨덴 산업구조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에 스웨덴에서 수출위주의 산업에 비해 내수 중심산업이 더욱 성장함에 따라 세력을 키우며 등장하게 된 신흥 자본가들은 자유무역이나 노동탄압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사민당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정당이 관료보다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스웨덴은 한국과는 정치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런 스웨덴이 한국이 지향해야할 복지국가 모델로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좋은 사회를 갖고 있는 국가들을 하나의 지표로서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려면 최대한 유사한 조건을 가진 나라를 그 대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노동 중심의 완전 고용과 모두가 고루 향유할 물질적 풍요를 위한 생산성을 강조했던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 고용 없는 성장과 생태위기가 심화된 오늘날에도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결국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현재의 글로벌 정치경제적 맥락 안에서 자국의 현실에 맞는 실현가능한 '잠정적 유토피아'를 기획하고 제시하면서 경쟁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비그포르스가 몸소 보여주었던 유의미한 가르침에도 부합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