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은 크게 체계적(공시적)인 방향과 역사적(통시적)인 방향 두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역사적 접근방법을 통하면 시대별 수사학의 부침이 드러난다. 수사학은 어떤 시대의 특정한 조건을 반영하는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깊은 역사를 지닌 다른 학문들처럼 수사학 역시 고대 그리스의 유산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공간을 창출하면서 수사학의 생성과 발전을 자극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의 플라톤과 정념의 소피스트 수사학 양극단을 중용으로 이끌어 통합했지만, 수사학의 일차적 목적은 '설득'이며 설득의 기본은 논리라고 여겼다. 자연스레 수사학의 요소들 중 '논거발견 및 배열술'이 부각되었다. 반면 이후로는 미학적이고 문학적인 측면과 관계된 '표현술'이 강조되면서 수사학은 왜소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 이유는 우선 아테네 민주주의가 로마 제정으로 대체되면서 정치적 토론이 예전만큼의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중세에는 교회의 성직자들이 말을 독점했던 까닭에 수사학의 공간이 더욱 협소해졌다. 절대적 권위의 교회가 무너지고 고대가 재발견된 르네상스 시기에야 수사학은 그 지위를 어느 정도 회복했으나, 표현술로 '줄어든 수사학'의 경향은 여전했다. 이후 현대 민주주의의 등장으로 수사학의 번영 조건인 제약 없는 공론의 장이 다시 열렸고, 종합적 성격의 수사학이 재조명 되었다.
이렇듯 수사학의 성쇠와 그에 따른 변모는 민주주의의 발전 및 후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한 사회의 공적영역에서 드러나는 언어의 품격은, 그 사회가 가진 민주주의의 질을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 좋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말들의 성찬은커녕 공허하고 반미학적인 말, 말이 아닌 물리적 대결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참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