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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양말님의 서재

이 책은 작년 말, 그러니까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며 산 책이다. 미국까지의 기나긴 여정, 그리고 시차극복 실패를 예상한 유비무환, 아울러 잠못드는 도시인 시애틀에 들고가 읽기에 딱일거 같아 선택했다. 나의 이런 선택은 탁월했다. 비행기는 연착되고 시차는 3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아예 될 생각을 안하니 말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 많은 책들 중 '토쿄타워'였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인천공항 서점의 베스트셀러란에 위치에 있었기에 그랬다고, 그리고 책 부피도 그다지 크지 않아 적당히 읽을 수 있을거 같아 그랬다고 답할 수 밖에 없겠다. 선택의 탁월성은 책 자체에 있지 특정 소설이나 작가에 있지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작품을 실제 읽은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뭐니 이게?  대충 아무렇게나 막 섞어놓고 저자도 잘 모를 그런 몽환적 분위기를 막 연출하면서 신들린듯한 카메라 워크로 때우면 그게 소설 되는거니?',  이거다.

사실 읽은지 몇달이 지나서 내용도 잘 기억이 안난다. 중년의 바람난 아줌마와 그녀를 빨아먹고 사는 젊은 놈팽이 얘기다. 하기사 지금까지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이 소설이 훌륭한 소설이겠지......흔히 우리나라 심사위원들이 무슨무슨 작품상을 받은 소설 뒷부분에 심사평에서 하는 말 있지 않은가.   "주제를 포착하고 형상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역시 훌륭한 소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읽은 이후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든다." 등등....

이런 심사위원들의 붕어빵 심사평에 근거해 평가를 해본다면 난 대체 가오리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걸 모르겠다. 물론 모든 소설이 뭔가 시대에 족적을 남길만한 그 어떤 위대한 철학이나 사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철도원' 등을 쓴 아소다 지로와 같은 탁월한 스토리 텔러로서의 모습도 보이지 못하는거 같아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결국 그녀도 생활인으로서의 붕어빵 장수에 불과한 사람이던가?

하지만 많은 한국의 독자들을 보건데, 그녀에 열광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건 대체 무엇을 반영하는 일인가? 우리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바로 그런 분위기 때문인가? 왠지 모를 쓸쓸함 혹은 고독. 뭐 좀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현대인의 소외라던가 대충 갖다 붙일 단어는 많다. 하지만 중경삼림은 내용이 있으니 결코 같은 부류로 볼 수 없고 그것도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답을 내릴 수 없을거 같다. 다만, 앞으로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작품은 다시 읽게 되기 힘들것 같다. 바로 몇일 전 읽었던 일본의 추리소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 받았던 실망감과 더해 일본 소설에 대단히 실망한 최근 몇달이다.

뭐 대중적으로 일본소설이 인기를 끄는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일본과 한국의 소설가들을 보자면 확실히 한국쪽이 나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일본소설의 열풍도 거품처럼 사라질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함을 찾는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문학작품까지 바닥에 떨어져서야 곤란한거 아닌가 싶다. 무슨 경영관련 서적에는 쥐새끼가 치즈를 다 먹고서는 어디로 갔냐고 하는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책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기사 요즘엔 무슨 어떤 놈이 멋졌다 라는 따위의 소설 아닌 소설이 득세하는 마당이니 할 말은 없지만 많이 아쉽다는게 요즘 나의 마음이다. 어쩌면 '도쿄타워'가 노렸던게 바로 이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 많은 독자로 하여금 결국 책을 다 읽은 이후 느끼는 이런 쓸쓸함,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고도의 지적 노림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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