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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기전 이곳에 올라온 평들을 대충 훑어보고는 기대를 많이 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은 십분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총 다섯편의 단편이 있는데 그중 단연 압권은 '사랑 있는 내일' 이었다. 아마도 다른 분들도 대부분 공감하리라 믿는다.

다섯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각각의 주인공들 그 누구도 완벽한 Loser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회부적응자 일수는 있으나 '한시적'이라는 타이틀을 갖다 붙일 수 있을 만한 이도 많고 낙오자라는 말로 무시할 수도 있으나 '자발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야 마땅한 이들도 있다. 다만, 그것이 자발적이건 한시적이건 세상은 그런 그들을 총체적으로 '낙오자' 혹은 '사회부적응자'라고 매도하기에 Loser라는 단어의 범위에 이들이 포함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다섯편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어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앞만 보고 한걸음 한걸음, 위로만 내딛으며 평생을 살아온 '네이키드'의 이즈미는 이혼과 동시에 무기력증에 빠진다.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 이즈미를 안따깝게 보며 낙오자라고 걱정하는 동창의 시각은 잘못됐다. 충분히 그녀에게 현재의 삶은 휴식일 수 있는 것이다.

'어딘가가 아닌 여기'의 가토씨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가지고 먹고 살고 그런 남편이 구조조정을 당하여 돈이 궁해지자 근처 동네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번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특별한 목표도 없고 만약 남편이 다시 돈을 잘 번다며 이런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도 없고 남는 시간에 푹 쉬고 쉽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으로 나태한 평범한 중년 여자이다.

'죄수의 딜레마'의 미토는 약자로 남길 원하는 속물근성의 여성일 뿐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안타깝게도 같은 부류이기에 문제가 될 뿐. 얼마전 기사에 나왔듯이 남녀에게 있어 남자쪽 조건이 여자쪽보다 좋은 커플의 경우가 더 오래가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니 미토도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

'플라나리아'의 룬짱은 암수술후 혼란속에 사는 어찌보면 전형적인 모습일 수 있다. 모든 이가 열심히 나서서 적극적으로 암과의 사투를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룬짱처럼 재수 옴붙어서 생긴 암때문에 짜증이 날만도 하고 그런 그녀의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독설처럼 노악취미를 부려야 직성이 풀릴 수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사랑 있는 내일'의 스미에다. 마지마가 주인공이나 그는 '네이키드'의 이즈미처럼 까지는 아니지만 앞만 보고 달려온 남자이다. 돈이 아닌 가정을 위해서지만. 가정이 사라진 지금 그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인다. 다만, 미스테리한 스미에만이 다르다. 그녀는 전혀 다른 부류다. 공원 놀이터 밑에서 노숙을 하며 술값대신 손금을 봐주며 살아가는, 나이는 예상과는 달리 마지마씨와 같은 36. 너무도 매력적인 캐릭터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무척이나 아쉽다. 늘 그렇지만 재미있는 소설의 특징 그대로다.

어쨌든 이 단편들의 주인공의 공통적인 특징은 더이상 열심히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왜 안달릴까? 달릴 이유가 없거나 애초에 달리는 노가다를 싫어했다거나 혹은 달리다 지쳤기 때문이리라. 주인공들의 이름을 바꿔 서양식이나 한국식으로 지은 다고 해도 물씬 일본소설의 색깔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일본 소설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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