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아내, 어이없는 남편
하얀양말 2006/03/10 01:48
하얀양말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일단 이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 순풍에 돛단듯 술술 읽힌다. 나처럼 책읽기에 관해서만은 Slow Movement를 보여주는 사람도 3~4시간이면 읽을 정도이니 그것은 칭찬받을만 하다. 다만, 간혹 가다 주요 비유로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축구관련 내용에서 약간 가독성이 떨어지기는 하다. 그 이유는 축구에 문외한이라서라기 보다는 그 비유가 적절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첫 몇장을 넘기면서 과거 읽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후자의 경우는 야구를 주요 모티브로 삼고 야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야구가 아닌 축구가 등장하지만 축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세상에 대한 비유로서만 축구가 존재한다. 따라서 축구를 몰라도 읽기에 부담이 없다. 삼미슈퍼스타즈야 일단 이 팀과 야구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에 큰 차이가 있다 하겠다.
이 책의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사실을 자신의 아내가 알게 된 때이라고 느낀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이 향후 가지게 되는 무게가 결정될 판이었다. 그저 그런 소설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심리, 그리고 그 반응, 갈등과정 등에 있지 않았나 본다. 하지만 이는 나 개인적인 희망사항이었고 소설은 맥없이 아내의 임신이란 도구로 이 갈등을 바로 없애버린다. 맥빠지는 일이다.
따라서 다분히 작위적인 남편이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아내는 오히려 대단히 솔직한 캐릭터로 존재하나 그 상대방인 남편의 캐릭터가 엉망이 되버린다. 작가는 남편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그리고 이 소설을 위해 남편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이런 선택을 강요받고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들지만, 그런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없어 아내의 임신 이후부터는 바람빠진 풍선마냥 맥아리가 없어진다.
일처다부제, 소재 좋았다. 아울러 작가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를 받쳐주는 각종 인류학 등의 지식들이 작가의 얘기처럼 피상적이지만은 않았다. 허나 남편이라는 주인공은 그저 안드로메다 쯤에서 날라온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었을 뿐이다.
아! 물론 소설이니 이런것쯤은 감안하고 봐야겠지. 세상 소설속 주인공이 모두다 현실이라는 범주에서 존재가능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고 있는 소설의 내용은 보다 현실적이고 그리고 설득적인 캐릭터로서의 남편을 창조해야만 했다. 그걸 가능케 하는 마지막 관문이 바로 아내의 임신전 상황이었고 거기서 많은 독자는 무릎을 탁치며 작가의 인간심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상상력에 탄복할 수 있게 만들 그 무언가를 기대했다고 한다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결국 이 게임의 분수령이 되었어야 할 부분에서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소설의 후반부는 급작스럽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내가 중혼을 선택한 것은 둘 다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대단한 살림꾼으로서 억척스럽게 최선을 다했지만 그녀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랬던 아내가 과거와는 달리 남편의 아파트에 주로 거주하게 된다. 물론 남편의 땡깡이 있었지만 이에 굴복할 여자가 아니지 않았던가? (물론 작가는 이를 일종의 미래를 위한 장치로서 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
이런 갑작스러운 나약한 아내의 캐릭터가 미안했던지 아내는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날아가 몇달을 버틴다. 남편은 속이 타고 괴롭지만 방법이 없다. 이후 그 때문인지 아이는 아파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고, 또한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내는 뉴질랜드라는 그들만의 이상향으로의 이주를 제시한다. 결국 날라간다는 얘기.
뭔가 줄듯줄듯, 보여줄듯 말듯 하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수많은 B급 영화들이 떠오른다. 애초에 작가가 해피엔딩을 염두로 두고 그것을 현실에서 가능케 하려고(이 소설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문제점은 결국 아이가 커가면서 과연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해외로 이주한다는 너무나 무책임한 결론으로 끌고 간다.
만약 작가가 일처다부제를 포기할 의도가 조금도 없었다면 - 이 작품의 내용처럼 - 갈등이 좀 더 등장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론이 희극이건 비극이건 그건 그 이후 문제이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