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철 교수의 셰익스피어 번역은 오늘의 실정에 맞는 우리말 번역을 하겠다는 민음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기획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다. 억지로 율격을 맞추려다 보니 번역해서는 안 되는 관사 같은 것을 번역하는가 하면 자연스러운 우리말 어순과도 배치되는 요령 부득의 번역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번역문을 여러 번 읽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부지기수이다. 특히 예전에 출판되었던 <햄릿>은 의미 전달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았을 때 거의 최악의 번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오래 전에 출간된 정음사와 휘문출판사 번역본을 옆에 놓고 비교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그때 정말 이 책을 집어던질 뻔했다.) 이제 그런 헛수고는 절대 하지 않으련다. 원전이 운문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번역본도 반드시 운문으로 옮길 필요가 있는가. 물론 운문으로 옮기면서 의미를 고스란히 살린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일이겠지만 의미 전달을 훼손하면서까지 운문 형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점에서 잠깐 <한여름 밤의 꿈>을 살펴보았는데,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얼른 덮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과연 우리말에 율격이란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시조나 가사 같은 장르가 자수를 고려한 음보율로써 율격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오늘날 그것이 우리에게 계승되어 가슴 깊이 다가오는 형식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시를 시답게 하는 형식적 요소는 글자 수의 인위적 조정이 아니라 표현의 반복과 병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오늘날 그것도 번역 작품에서 글자 수를 고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는 이미 김재남, 신정옥 두 사람의 초인적인 노력에 의한 개인 전집과, 많은 영문학자들의 공역에 의한 훌륭한 전집이 출간되어 있다. 특히 동국대 교수였던 김재남 선생의 세 번에 걸친 셰익스피어 번역은 후학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고봉준령의 전설이 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그 전집은 오래 전에 번역되었지만 오늘날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되는 좋은 번역본의 전범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절판된 지 오래라서 이제는 헌책방에나 가야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민음사에 한 마디 하면 이미 많은 번역본을 가지고 있는 유명 작품의 출간에 급급해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것도 시리즈 초창기에 내겠다고 예고한 작품들(예컨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감감무소식인 채 거의 완벽하게 현대어로 옮겨진 <삼국유사> 같은 책을 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규모가 되었으면 예전에 절판된 책을 재계약하여 새 책인 양 내는 얌체 짓도 삼가기 바란다. 대중성과 수익성을 떠나 미련스럽게 처녀지만 개척하려는 문학과지성사의 유사 시리즈를 본받으라는 말은 아니다. 세계문학 시리즈로 돈을 벌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전할 뿐이다.
그나 저나 언제가 돼야 유르스나르 누님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 번역되어 나오려나. 생각건대 번역자인 곽광수 선생의 직무유기가 큰 몫을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예전에 이휘영 교수가 번역한 것만 못한 것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