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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 바버라 J. 킹
  • 15,300원 (10%850)
  • 2022-02-25
  • : 3,068
“코끼리가 슬퍼할 때 슬픔은 크고 주름진 회색 몸에서 물결치며 만져질 듯 흘러나온다.”(p105)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입니다. 저자 바버라 J. 킹은 인류학자로, 동시에 ‘유인원 관찰자이자, 고양이 구조자이자, 과학 작가’입니다. 책을 읽기 전 살짝 걱정이 되었던 것은 동물들의 슬픔에 집중한 나머지 지나친 의인화가 되어 있으면 어쩌나 했던 것입니다. 동물의 특정 행동을 슬픔의 표현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동물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아닐 뿐더러, 그런 선입견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동물이 보일 경우 그것은 자칫 혐오감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총 15장에 달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관점을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내가 전하고 싶은 핵심은 다음과 같다. 동물들이 긍정적이고 다정한 태도로 동료들을 대우한다고 사랑이라고, 감정표현이 수반된 반응으로써 죽은 동료를 대우한다고 애도라고 마냥 판단해서는 우리가 붙잡고자 하는 현상의 본질을 희석하는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p331-332)

책에는 코끼리뿐만 아니라 고양이, 개, 까마귀, 곰, 심지어 거북이까지, 여러 동물들의 애도의 행위를 통해 동물들의, 아니 책의 표현대로 ‘비인간 동물’들의 슬픔을 살핍니다. 슬픔의 감정을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중요한 동반자 동물의 죽음 이후 남은 동물이 눈에 띄게 고통스러워하거나 일상생활이 변화한 경우’에 보이는 특정 행동과 분위기, 신진대사의 변화 등으로 정의하고, 그 표현이 인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별의 슬픔을 겪는 동물들의 애도를 읽으면서 알게 된 가장 큰 수확은 제 선입견을 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물을 순수한 존재로 표현할 때마다 저는 으레 냉소적었습니다. 침팬지가 얼마나 잔인한데. 퓨마가 나무늘보 잡아 먹는 등 걔들도 먹고 살기 위해 살생과 폭력은 일상이라구. 이런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이 책이 아니었으면 저는 깨닫지 못했겠지요. 침팬지는 약한 동료를 집단 폭행하는 등 잔인한 면이 있습니다. 육식 동물은 초식동물을 먹이로 삼습니다.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본성의 한 단면이고, 그 단면조차 개체마다 모두 다른 빛을 띱니다. 인간을 생각해보면 쉬웠을텐데. 인간은 악마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인간성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성향도 모두 다르지요. 이것을 왜 동물들에게는 적용하려 하지 않았는지.

“닭은 침팬지나 코끼리, 염소와 마찬가지로 슬픔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 그들 각자의 성격과 전후 사정에 따라 슬픔은 드러날 때도 있고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바로 우리가 그러하듯이.” (p17)

글의 주제가 동물의 슬픔인 만큼 책에는 마음 아픈 동물들의 이야기가 넘쳐 납니다. 그 중 가장 놀랐던 것은 수족관에 갇혀 사는 돌고래이야기였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자신의 의지로 숨을 참아 세상을 떠난 사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살인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담즙을 착취하기 위해 불법으로 지은 곰 농장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던 엄마 곰이 역시 고통당하는 아기곰을 안아 질식사 시킨 후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는 고통 유발자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물어봅니다. 왜 슬픔이었을까. 동물의 감정을 헤아리고 함께 유대감을 느끼기엔 다른 감정들도 많았을텐데 왜 하필 슬픔, 그것도 사별에 대한 애도였을까. 그것은 슬픔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앎으로 슬픔의 존재를 알고, 슬픔의 존재를 통하여 사랑을 압니다.

“우리 인간과 다른 동물들은 서로 닮았고 , 또 서로 다르다. 닮은 점과 다른 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펴볼 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쪽은 닮은 점이다. 아마 동물들이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우리가 그러하듯이) 슬퍼하기 때문인 것 같다. 동물의 슬픔은 동물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지표로 볼 수 있다.” (p19)

이렇게 좋은 책을 출판한 서해문집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지구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 생명들과의 연결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 고양이 찬이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찬이는 길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었습니다. 개냥이도 아니었고, 겁이 무척 많은데다, 까다롭고 ‘성깔있는’ 고양이였습니다. 13년의 세월을 함께 하면서 찬이는 집안의 대왕대비마마이시자, 하찮은 집사들의 주인이셨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찬이가 고양이별로 떠나고 1년의 시간이 넘게 흘렀어도 저는 찬이의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 생각합니다. 말로만 집사였지 과연 나는 얼마나 찬이의 마음을 헤아려줬을까 후회와 슬픔에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찬이가 마지막으로 떠날 때 저는 찬이의 손을 꼭 잡고 사랑해 찬아 엄마가 정말 너 사랑해 되도록 눈을 마주치려 애쓰며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찬이의 슬픔도 저의 슬픔도 사랑의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을. 그 만남은 죽음과 삶을 넘어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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