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의 판도라>① 이후에, <암흑의 핵심>②과 <콩고>③ 이후에, <토성의 고리>④ 5장 이후에는 더욱 만나고 싶었던 로저 케이스먼트다. 요사 선생이 케이스먼트 일대기를 펼쳐 보여준다. ‘콩고의 꿈’도 아니고 ‘아마존의 꿈’도 아닌 ‘켈트의 꿈’이다. 왜인지는 천천히 알게 되리라. 요사 선생은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가 케이스먼트를 살게 해주었다. 무엇을 위해? 700쪽을 거쳐 다시 죽이기 위해.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원히 돌려주기 위해서이겠다. 2010년 작품을 2022년 번역으로 2025년 여름에 읽었다. 요사 선생은 봄에 타계했다. 선생 생전 읽었더라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았을 걸 싶다. RIP.
로저 케이스먼트는 1864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고무 채취 시절 벨기에령 콩고 자유국의 반인륜적 행위와 학살범죄를 조사하고 근절에 힘썼다. 이어 임관한 페루령 아마존에서도 식민지 회사의 악행을 고발하여 세계적인 호응을 얻어 성과를 이루었다. 이후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16년 반역죄로 영국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집행되었다. 이것이 백과사전에서 볼 수 있는 케이스먼트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보면, ‘블랙 다이어리’에까지 눈길이 미칠 것이다. 이 모든 흑백 사진 같은 밑그림에 요사 선생은 색깔과 소리와 의지를 입혀 입체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아름답고 긴 주석 격이다. 책 뒤편에 참고문헌은 없다. 아차, 이거 소설이지, 했다.
소설을 열면 감방 문이 열린다. 케이스먼트가 사형을, 혹은 사면을 기다리며 ‘매일, 매 시간, 매 분마다 여러 번 계속해서’⑤ 죽어가는 펜턴빌 교도소다. 케이스먼트는 4월 아일랜드 바나 스트랜드에서 체포된 이후 100여 일을 감옥에 머무른다. 케이스먼트를 감방에 가둬놓고 요사 선생은 그의 유년시절부터 중년까지, 콩고와 아마존에서의 행적을 되짚어 그려 보여준다. 장이 바뀌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식이다. 감옥-현재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시시각각 너무나 아깝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흑백 사진이 말하길, 이미 교수형은 집행됐고 시신은 묻혔는데, 묻혔음을 아는데, 이 조마조마함은 무엇일까. 이상한 아픔은? 분명 문학이 하는 짓이다. 생각건대 요사 선생은 숱한 자료·현장조사와 인터뷰 외에도, 감옥 안의 자신-케이스먼트를 수없이 시뮬레이션 했을 것 같다. 셰리프는 케이스먼트를 어떻게 대했을까, 대화는 적대적이었을까, 면회 시간은 어땠을까, 사제와는 경건한 시간을 보냈을까, 어떤 꿈을 꾸고 꿈에서는 누굴 보았을까, 그리워했을까, 사형과 사면을 오가는 좌절감과 기대감은 어땠을까, 후대인 우리가 아는 결말을 혼자 모르는 마음은 또…
바깥세상에선 사면 청원이 진행 중이다. 친구였던 이들이 케이스먼트의 과격한 민족주의에 등을 돌렸다는 걸 알고 있다. 과격했다니, 무슨 말인가. 전쟁 시기 케이스먼트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이이제이, 즉 영국의 적국인 독일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1916년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에 맞춰 독일의 무기와 군대를 데려와 투쟁을 지원하려 했다. 그러나 그리 되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이들을 같은 편으로 뭉쳐 함께 싸우게 한다고? 외교관으로서의 수완을 믿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감히 말하건대, 어쩜 이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 했다. 물론 ‘천진난만한 이상주의 속에서’⑥ ‘고지식하고 순진’⑦했기에, 콩고에서도 아마존에서도 ‘미개해지지’⑧ 않을 수 있었을 터다. 케이스먼트가 저승에서 억울해할지도 모르겠기에 덧붙이자면, 독일의 지원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케이스먼트는 부활절 봉기가 실패하리라 예상했다. 따라서 이를 만류하려고 독일 잠수함 속에서 5일 간 구토와 멀미에 시달리면서 아일랜드 해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다고 적국 무기를 들여온 혐의로 회부된 재판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케이스먼트의 사면 청원에 서명하지 않았던 사람 중에는 조지프 콘래드도 있다. 콩고에서 친분을 맺은 콘래드는 케이스먼트가 <암흑의 핵심> 공동저자라고까지 했다. ‘콩고 자유국에 대해, 인간 짐승에 대해’⑨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그러나 폴란드에서 귀화한 영국인으로서 정치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독일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으리라 감안하더라도 이는 케이스먼트뿐 아니라 우리 독자들에게도 실망감을 준 지점일 듯하다. 용기도 감수성도 모자랐을까. ‘위대한 작가이면서 정치적 사안에서는 겁쟁이가 될 수도’⑩ 있었을 뿐으로 여기면 될까. <암흑의 핵심> 속 귀화하는 야만성에 반대 추를 달아주기 위해 우리는 케이스먼트의 <콩고에 관한 보고서>를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반면 예이츠가 있고, 버나드 쇼가 있고 코넌 도일이 있다. 특히 버나드 쇼는 애국심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좌파이면서도 케이스먼트의 구명을 호소했다. ‘관대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애국자와 민족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⑪ 바로 콘래드에게 주고 싶은 문장이다. 저 이름들이 감옥에 있는 케이스먼트로 하여금 적잖이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그렇게 혼자는’⑫ 아니게 해주었으리라.
이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인 인물에게서 줄곧 위태로움을 느끼게 되는 지점은 역시 블랙 다이어리다. 동성애를 대하는 시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오스카 와일드를 소환할 수 있겠다. 케이스먼트보다 고작 10살 연상이었던 와일드는 동성애 죄목으로 수감돼 복역했다. (더구나 레딩 감옥으로 이송되기 전에는 펜턴빌 교도소에도 있었다) 하여 케이스먼트가 비밀스럽게 적어둔 에로틱한 일화들이 재판에서도 여론에서도 분명 불리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케이스먼트의 성소수성은, 억압받는 다른 이들에 대한 감수성을 예민하게도 했을 터인데, 이건 제발트 선생도 지적한 바 있다.⑬ 요사 선생은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한다. 케이스먼트가 못다 이룬 판타지를 블랙 다이어리에 적었으리라는 짐작이다. 이와 더불어, 젊고 잘생긴 북유럽 루시퍼, 사기꾼 밀정 애인 아이빈트를 등장시켜 케이스먼트를 배신하게 한다. 혹시나 해서 아이빈트 검색해봤다. 가상 인물인 모양이다. 결코 누군가와 나누거나 공식 보고서에 쓸 수 없었던 욕망, 불안정함, 염려, 돌봄, 건강과 돈 문제 등을 투영한 상징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과연 요사스러운(문학적인) 장치로, 케이스먼트 성격이 이이로 인해 도드라진다.
감방 문이 닫힌다. 요사 선생은 끝내 사형장까지 나를, 아니 케이스먼트를 데리고 간다. 식민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를 거친 긴 여정 끝에 결국 아일랜드 또한 콩고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사람을. 영국 외교관으로 일했고 영국으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며 영국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멀리서 계몽되어 이제야 대영제국의 속국이 아닌 아일랜드를 재발견하여 몰입하고 있는 사람을. 순수하고 위태롭고 외로웠던, 그러나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그렇게 혼자는 아니었던 사람을. 자신의 성정체성을 생각하며 ‘주인 없는 동물 같은 노년’⑭을 내다봤던 사람을. 무엇보다 조국의 독립을 원했던 이로서 교수대에 선 케이스먼트의, 의연한 마지막을 목격하게 한다. 잊을 수 없는 죽음의 풍경이다.
미스터 앨리스가 마지막으로 소곤거리는 소리를 여전히 들을 수 있었다. “호흡을 멈추면 더 빨리 될 겁니다, 경.” 로저는 그의 말에 따랐다. (697쪽)
‘소설적 진실’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겠지만, 따옴표 없이 소심하게 소설적 진실이라고 써 본다. 한 사람을 얼마나 알 수 있는가. 이야기로, 이야기 속 캐릭터로 볼 때에야 서서히 드러나 약간은 선명해지는 듯하다고, 결국은 오해하고 만다. 그게 한동안 진실이라고 믿는다. 요사스럽게(문학을 통해) 만나 그러한 오해-진실에 다가선 느낌이다. 요사 선생이 기꺼이 우리에게 데려다주며 명예를 회복시킨 아일랜드 애국자, 잘 영접하였습니다. (자꾸 요사스럽다고 써서 죄송합니다, 선생의 한국 독자들은 종종 이렇게 쓴답니다, 자제할 수가 없어요) 미스터 앨리스의 충고에 따라 함께 호흡을 잠깐 멈춰본다. 케이스먼트는 영영 못 쉴 다음 호흡이 내겐 어김없이 찾아온다. 다만 깊은 한숨과 비통함으로. 1965년 아일랜드로의 유해 송환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이어진다. 벅찬 통증이 낯설지가 않아, 생각해보니 이거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공군 제11전투비행단 방주원 소령)
4년 전 여름에도 같은 눈물을 흘렸다. 국ㅃ…이라고 할까봐 남몰래. 그거 아니고 단지 애국심인 걸. 홍범도 장군 역시 소련 공산당과 연대한 점을 보면 케이스먼트와 약간 닮은 구석이 있는가. 다음 독서 계획이 <범도>⑮로 흘러갈 줄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보관함에 넣어두고 이제 이별할 <켈트의 꿈> 표지를 한참 쳐다본다. 턱수염 아래 보이지 않는 입술이 웃고 있다면 좋겠다. 켈트의 꿈,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었으니까요, 로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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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정창 옮김, 들녘, 2009
② 조지프 콘래드, 이상옥 옮김, 민음사, 1998
③ 크리스티앙 페리생, 톰 티라보스코, 양영란 옮김, 미메시스, 2016
④ W. G. 제발트, 이재영 옮김, 창비, 2011
⑤ 532쪽
⑥ 430쪽
⑦ 288쪽
⑧ 117쪽
⑨ 112쪽
⑩ 107쪽
⑪ 307쪽
⑫ 48쪽
⑬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바로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다.’ (<토성의 고리>, 161쪽)
⑭ 470쪽
⑮ 방현석, 문학동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