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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서재
  •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2
  • 알렉시스 드 토크빌
  • 28,500원 (5%1,500)
  • 2018-04-12
  • : 421

 

(*이른바 가독성이나 용어 선택 등의 ‘번역’의 질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내용 이해의 측면에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책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다룰 여력은 없고, 번역 소식에 책을 구매하려고 미리보기로 내용을 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어서, (교*문고 사이트에서) 미리보기로 공개된 부분을 임의적 표본으로 삼아 살펴본다.)

 

1.

 

2권 1부 1장 “아메리카인들의 철학적 방법에 대해”는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도 아주 유명한 부분이다. 번역서의 27-28쪽에 걸친 문단은 미국인들의 철학적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것의 주요 특징을 말하고 있다. 문제는 그 문단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 주요 특징은]...사물의 이치를 자기 스스로, 자기 힘으로 탐색하는 것, 수단에 구애받지 않고 결과를 추구하는 것, 형식을 통해서 본질에 다가서는 것 따위이다.”

 

그런데 바로 두 쪽 뒤 30쪽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아메리카인들은 형식이나 절차 따위를 경멸하는데, 형식이라는 것을 그들과 진리 사이에 놓인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장막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형식을 통해서 본질에 다가서는 것>이 철학적 방법인 사람들이 <형식을 경멸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토크빌이 미국인들에 대해서 모순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 혼란스럽다.

이는 앞 구절의 내용과도 일관적이지 않다. <수단에 구애받지 않고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형식을 통해서 본질에 다가서려> 한다고?

토크빌이 횡설수설하는 것인가?

 

“형식을 통해서 본질에 다가서는 것”은 Flammarion 판에서 “viser au fond à travers la forme”이라고 되어 있다. “viser à A à travers B”는 "B 너머(가로질러) A를 겨냥한다(겨눈다)"는 말이다. <밭을 가로질러(밭 너머) 늑대를 겨냥한다>고 하는 경우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그렇다면 애초의 문장은 <형식 너머(혹은 형식을 가로질러) 본질을 겨냥한다>는 뜻이며, 좀 더 직역에 가깝게는 <틀 너머 바탕을 겨냥한다> 정도가 되고, 뜻만 살리면 <형식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한다>, <틀이 아니라 바탕을 보려한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번역을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fond’을 ‘본질’로 번역하느냐 ‘바탕’으로 번역하느냐, ‘다가선다’가 여기서 무슨 뜻이냐 따위의 문제는 제쳐두자.

 

문제는 어디까지나 “à travers”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이해 때문에 토크빌의 진단이 모순이 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토크빌의 취지는 미국인들은 유럽인과는 달리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형식에 기대지 않고, 진리에 다가가려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형식을 경멸하고 불필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형식을 통해서 본질에 다가간다>고 하면 안 되고,  <형식을 건너뛰어> 혹은 <형식 너머로> 본질을 겨냥한다고, 좀 더  내용을 살리는 쪽으로 하면 아예 정반대로 <형식을 통하지 않고> 본질에 다가가려 한다고 써야 한다. 역자가 내용을 정반대로 이해한 셈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형식을 통해서 본질에 다가서는 것”과는 반대다.

 

외국어 해독 능력이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누가 그런 걸 자신할 수 있겠는가?

 

다만, 앞뒤 맥락에도 맞지 않고, 두 쪽 뒤에 나오는 대목과 곧바로 상충하는 식으로 이해한 내용이 책에 들어있다면, 이는 가볍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가령,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데 두 쪽 사이에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면 그 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

 

 

2.

 

미리보기에 공개된 부분만으로 판단할 때, 역자는 대체로 간단한 내용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지는 부분들에서는 부정확한 이해를 내보인다.

(물론 하필이면, 미리보기에 공개된 부분만 잘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모든 부분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글의 평가는 몹시 한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고, 무시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출판사는 “토크빌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한 원전 완역본 출간”이라며 자신만만한 문구로 책을 광고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조금 낯부끄러울 텐데, 아마 기존의 번역본과 차별화를 꾀해 판매를 진작하려는 의도겠지.

 

그러나 여기서 <원전 완역본>이라는 것 말고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문구일지 모르겠다. <유려한 문체를 포착?>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위에서 다룬 대목 전체를 가져와서 간단히 살펴보자.

 

Comme c’est à leur propre témoignage qu’ils ont coutume de s’en rapporter, ils aiment à voir très clairement l’objet dont ils s’occupent ; ils le débarrassent donc, autant qu’ils le peuvent, de son enveloppe, ils écartent tout ce qui les en sépare et enlèvent tout ce qui le cache aux regards, afin de le voir de plus près et en plein jour. Cette disposition de leur esprit les conduit bientôt à mépriser les formes, qu’ils considèrent comme des voiles inutiles et incommodes placés entre eux et la vérité.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만을 믿는데 오랫동안 익숙해진 까닭에, 아메리카인들은 자신과 관련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꼼꼼하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가능한 한 사물의 속내를 들여다보려 하며 사물에 대한 통찰을 가로막는 칸막이를 제거하고 사물을 감싸는 모든 장막을 벗겨낸다. 그리고 마침내 사물을 가장 명료하게 포착해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아메리카인들은 형식이나 절차 따위를 경멸하는데, 형식이라는 것을 그들과 진리 사이에 놓인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장막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아카넷 판> 30쪽 첫째 문단)

 

 

<오랫동안 익숙해진>다는 내용은 없다. <꼼꼼한 관찰>은 좀 곤란하다. <사물의 속내>를 들여다보려 한다는 것도 무리다. <사물에 대한 통찰>? <마침내...명료하게 포착>? 으응? 어디에 이런 내용이?

특히 <절차>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형식적 절차”, “절차와 형식을 따름” 등의 관용적 표현 하에서 “형식”을 이해하여, 역자가 과감히 삽입한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토크빌이 쓰고 있는 ‘형식’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거치는 틀에 맞춘 의례적 과정이나 절차’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 파악과 관련된 철학적인 의미다. “절차”라는 단어가 들어갈 이유가 없다.

 

물론 내가 번역자의 더 깊은 이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과연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한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정말 아닌 것 같다.

 

번역의 유려함은 제쳐두고 소위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옮겨보면 얼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이 목격한 것에만 의존하는 습성이 있기에, 그들은 자신이 대하고 있는 사물을 아주 명확하게 보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물을 더욱 가까이에서 환한 빛 속에서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사물의 겉포장을 벗겨내고, 그들과 사물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치우고, 사물을 보이지 않도록 숨기는 모든 것을 들어낸다. 이러한 정신적 성향으로 인해 그들은 이윽고 형식을 경멸하기에 이르는데, 그들은 형식을 그들과 진리 사이에 놓인 쓸모없고 성가신 장막으로 여기는 것이다.”

 

여기서 토크빌의 문체를 평가하기는 힘들더라도, 그의 논지 전개의 유려함은 알 수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목격한 것에만 의존한다. --> 그래서 사물을 뚜렷하게 보고 싶어 한다. --> 그러려면, 사물을 밝은 곳에서 가까이에서 봐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 미국인들은 사물의 겉포장을 벗겨내고, 우리와 사물을 가로막는 것을 치우고,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을 모두 들어낸다. --> 그 결과 미국인들은 형식을 경멸하기에 이른다(conduit).>

 

그러니까 이야기가 미국인들의 인식론적인 경향성에서 시작해서, 사물을 <뚜렷하게 보려는> 욕구로 넘어가고, 그를 위한 미국인들의 인식론적인 활동의 특성으로 전개되어, 최종적으로 형식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연 <아카넷>의 번역이 <유려한 문체를 포착>했노라고 그토록 자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유려한 논지 전개> 만이라도 제대로 ‘포착’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카넷> 출판사는 “토크빌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한 원전 완역본 출간”이라고 주장한다.

<원전 완역본>은 맞는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토크빌 특유의 <유려한 문체를 포착했다>는 주장과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했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뒤의 두 가지가 의심스럽다면, 원전 완역본이라는 가치는 크게 퇴색될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아카넷> 측에서 기존의 번역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까지는 주장할 수도 있겠다만, 이대로라면 상술에 젖은 ‘과대광고’라는 평가를 피해가기는 어렵겠다.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한' 새로운 번역서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유려한 문체' 운운할 때가 아니다. 

 

p.s. 나는 역자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역자는 자신의 이해가 닿는 한 힘껏 번역했으리라고 믿는다. 다만 <유려한 문체>니, <원문의 정확한 의미>니 떠들어대면서 독자를 우롱하는 출판사의 파렴치함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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