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1945년 독일이지만 독일 외에 미국, 소비에트, 영국, 폴란드 유대인 등 다양한 국적의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국적만큼이나 제각각인 인간들이 각자의 욕망을 좇는 모습이 그려진다.
미국 병사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17세 소녀 아우구스테는 과거 자신을 돌봐주었던 첼로리스트 크리스토프가 독이 든 치약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월급 대신 받은 각종 물품을 종종 암시장에 팔아왔던 그녀는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어 또다른 용의자인 조카 에리히의 행방을 직접 찾아 나선다. 전쟁 후의 황폐한 여정을 힘겹게 버티며 나아가던 그녀가 마침내 조우하는 사건의 실체는 충격적이면서도 현재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서 허탈하기도 하다.
막판의 반전이나 트릭에 얽매이기 보다는 시대적 고통과 인간적 한계에 따르는 운명적 역설에 더 치중한 점에서 작가의 역량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