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앙드레 모루아, 리턴 스트레이치가 전기 문학의 3대 거장으로 뽑힌다고 한다. 각각 대표작으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바이런 평전‘과 ‘발자크 평전‘,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이 꼽힌다.
서구의 ‘Memoir‘ 장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기원을 삼을 정도로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몽테뉴의 <에세>(얼마 전까지 주로 ‘수상록‘으로 번역되었던),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 등 근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자전적 글쓰기는 고백/회고를 통한 1인칭 내면의 창조, 중세적 세계관의 ‘신-인간‘ 관계를 벗어나 근대적 주체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서구 기독교적 전통 때문인지 Memoir 장르는 서구 출판/독서 시장에서 여전히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분야다. 이는 아마 ‘기록문화‘와도 밀접히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일정 수준/분량 이상의 기록 자료 없이는 전기를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차 3호: 전기, 삶에서 글로> 서문을 쓴 기획위원 김영욱은 한 사람의 생애를 글로 옮기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기의 운명적인 한계 속에서 ‘한 인간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물은 바 있다. 유독 전기/평전 분야에 벽돌책이 많은 이유는 한 인간을 평면적으로 요약해버리지 않고, 최대한 입체적으로 풍부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투영된 결과이리라.
사관 없이 역사를 서술할 수 없듯 전기/평전 작가는 특정한 관점에 입각해 인물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관점이 단선적이고 도식적일수록 인물은 특정한 형상으로 상이 고착되고, 의미가 환원된다. 그렇다고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건조하고 나열한다고 그 사람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타인이라는 불가해한 존재와 자신 사이에 놓은 해석적 심연을 직시하면서 작가는 ‘둘의 끝나지 않는 대화‘에서 자신이 포착한 희미한 빛, 진실의 조각에 의지해 ‘하나의 이야기‘를 적을 따름이다.
한 사람이 남긴 기록/서술에 대한 재서술일 수밖에 없는 이중의 삶(한 사람이 살아낸 삶, 그 삶을 다시 살아내고자 분투한 전기 작가의 해석적 삶) 앞에서 삶의 다층적인 레이어들을 읽어내기 위한 노력하는 것, 이미지 조각들을 모아 마음속에서 영화처럼 상연해 보는 것, 깊은 호흡으로 세밀하게 한 사람을 상상/기억해 보는 것. 한 사람을 한 권의 책으로 번역하는 일은 이토록 지난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여담.
자기 서사 연구는 논픽션 장르의 전기, 자서전, 평전, 회고록, 일기, 편지뿐 아니라 자전 소설, ‘오토픽션‘ 같은 픽션 장르를 대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아니 에르노가 있고, 한국 작가 중엔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의 작가 이청준이 떠오른다. 샹탈 자케의 <계급횡단자들 또는 비-재생산>은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디디에 에리봉, 아니 에르노, <교양의 효용>의 노동문화사가 리처드 호가트 등을 논의한다. 빨리 읽고 싶다...
[책 속에서]
[서문]
나는 전기를 매개로 하여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비전 몇몇을 현대인의 눈앞에 펼쳐 보이려고 시도했다. (…) 나는 성직자, 교육 권위자, 행동하는 여성, 그리고 모험가, 이들의 삶에서 나를 사로잡았고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진실의 몇 단편들을 조사하고 밝히려고 했다.
나는 이하의 페이지들이 역사적 견지에서 만큼이나 전기(傳記) 본연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인간은 과거의 단순한 징후들로 취급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2)
우리는 훌륭한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저술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이 책에서의 연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러한 저작들−표준 전기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저작들−에 빚지고 있다. 그러한 저작들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많은 정보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귀중한 것−하나의 표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교훈을 얻게 되는지! 그러나 상술할 필요는 없다. 적당한 간결함−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빠뜨리지 않고 중복되는 것은 모두 털어 내버리는−을 유지하기 위하여. 간결함은 확실히 전기 작가의 첫 번째 의무이다.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두 번째 의무는 그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고수하는 것이다. 찬양은 그의 업무가 아니다; 자기가 이해한 대로 사실들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업무이다.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목표로 했던 것−냉정하게, 편견 없이, 숨겨진 의도 없이, 몇몇 경우들에서 내가 이해한 대로 사실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거장의 말을 인용하면−“나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는다: 나는 드러낸다.”(3)
[옮긴이의 글]
스트레이치의 이 책은,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 다시 쓰기’의 한 전형으로서 새롭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선 위인들의 이야기는 실제 삶을 그려내 보임으로써, 그 시대에 관한 더 감성적이고 더 구체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의료개혁의 이정표를 세운 나이팅게일, 국교회 부주교에서 가톨릭 추기경으로 변신함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종교 변동을 가장 극적으로 체현했던 매닝, 영국 지배계급의 가치관을 양성하는 사립 중고등학교를 개혁한 아널드, 세 대륙에서 활약한 영제국의 용사 고든. 우리는 이들의 전기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위대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면모를,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이들을 명사로 만들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론’과 제도들−영국 기독교, 의료체계, 명문 사립학교, 제국주의−을 인식할 수 있다.
더구나 스트레이치의 위인전은 보통 위인전과는 전연 다르다는 점에서 그 매력이 배가된다. 스트레이치 자신이 이전의 위인전들을 “케케묵고…그리고 무엇보다도 찬양 일변도”라고 엄중히 비판한 위에서 전기를 썼던 것이다. (…) 신실한 성직자 매닝 대신 지배욕과 출세욕의 화신인 매닝: 등불을 든 가냘픈 천사 나이팅게일 대신 비인간적일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나이팅게일: 럭비학교의 개혁자 아널드 대신 교육개혁자의 칭호가 무색한 아널드: 영웅적 전사 고든 대신 정서 불안 속에서 원주민 대학살과 영제국의 확장 계기를 마련한 고든. 스트레이치의 펜 아래서,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은 한결같이 근면하고 뛰어나게 유능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 독선적이며 편집적인 도덕 의식과 종교를 지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4명의 위인이 표명한 기독교는 서로 매우 달랐고, 한 인물 속에서도 상반된 견해가 뒤섞여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은 제각기 붙잡은 기독교를 내걸면서, 독선적 도덕 의식과 태도를 견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경탄할 근면성과 추진력은 자신들의 도덕과 종교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잊으려는 방편이었을까?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의 본성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330~331)
김교수에 따르면, 그가 6.25 사변 막바지에 교사 재직 중 군대에 소집되어 신병 훈련을 받을 때, 함석헌 선생님이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의 마지막 장 「고든 장군의 최후」를 번역하여 손수 옮겨 적은 열 장이 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제 80세를 바라보는 김교수는 그 편지를 “평생 가슴에 간직하였다”고 쓰고 있다. 우리의 선각자 함석헌 선생님과 김용준 교수는 스트레이치의 책에서 평생 가슴에 간직할 그 무엇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유난히 길고 한 때 영광의 신화에 싸여있던 빅토리아 시대는 이제 다시 새롭게 쓰여지기 위하여 거기에 있다. 그 시대를 출중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언제나 새롭게 읽혀지고 쓰여질 수 있다. 그런데 위인들의 생애를 새롭게 읽고 새롭게 쓰는 작업은 우리의 삶을 사는 방식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반세기 전에 함석헌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편지로 적어 보냈다는 사실 앞에서 새삼 곱씹게 되는 질문이다.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