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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서강대 사회학과에 재직 중인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가 출간되었다. 계급이 아닌 세대 불평등에 주목해야 함을 세대사회학의 이론적 논의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치하게 논증한 문제작이었다. 이 책이 주목하는 ‘불평등의 세대’, 즉 IMF와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받은 세대 집단으로 86세대를 지목하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임금피크제, 국민연금 제도 개혁 등 정책 개혁의 방향성까지 제시했다. 저자는 ‘58년 개띠’로 표상되는 산업화 세대가 IMF 외환위기 때 퇴직에 내몰렸다면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가 떠난 자리를 채우며 승승장구했고, 2000년대 후반 금융 위기(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도 부동산 자산을 기반으로 오히려 부를 축적한 특혜 집단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86세대의 파워 엘리트들을 논하는 부분이 제일 재밌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86세대가 정치권, 시민단체, 공공기관 등 사회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고, 세대 집단으로서 응집력과 인구학적 규모,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이익 집단의 화력 측면에서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상을 데이터를 통해 논증하니 설득력 있게 들렸다. 9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화, 정보화, IT 혁명에 발맞춰 네이버의 이해진, 카카오의 김범수 등 파워 기업(인)들의 성장 배경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진진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은 오늘날 상위 중산층upper middle class에 오른 86세대가 누린 특혜와 특권을 지적하며 특히 민주당과 그 지지층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공격하는 논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조국 사태,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지목된 조국에 관련된 비리와 범죄의 정황이 전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정국과 맞물리며 화제성이 커졌던 것 같다.
조국 사태 이후 공정과 능력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국문학자 천정환이 지적했듯 능력주의의 탈을 쓴 상위 중산층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가 출간되고, <엘리트 세습>, <특권>, <공정하다는 착각> 등 수많은 책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였다. ‘세대냐, 계급이냐’ 양자택일에서 이철승이 전자를 지지했다면 조귀동은 계급/계층의 후자에 집중해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이 더 심각함을, 이철승과 마찬가지로 각종 데이터를 통해 논증했다(조귀동은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신기한 점은 이분이 (무려) 조선일보 기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사회비평/칼럼 분야의 신진 작가가 출현했음을 독자들에게 각인하는 신호탄이었고, <전라디언의 굴레>, <이탈리아로 가는 길>까지 저술 활동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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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란 무엇인가. 이 제목은 한국 정치가 변하지 않으면 이탈리아와 같은 사회로 갈 거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좌파가 지향하는 독일의 사민주의나 북유럽의 복지 국가 모델, 우파가 지향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에 근접하기보다 우리의 현실은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의 잔재로 인한 성 차별, 상위 중산층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불평등 심화, 남북 문제로 대변되는 지역 격차와 사회 갈등 등 이탈리아와 한국 사회는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1980년대 GDP 기준 세계 5위권 경제 대국으로 승승장구했던 이탈리아가 정치권에서 비리 스캔들로 기존 정치 시스템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산업 구조의 재편 같은 시급한 국정 과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성숙한 선진 사회로 발돋움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사태의 근원은 정치의 실패에 있다고 강조한다. 미디어 재벌이었던 극우 정치인 베를루스코니가 장기 집권한 이후에 각종 포퓰리즘 세력이 난립하며 불안정한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한국이 그 전철을 무섭도록 유사하게 밟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제시되는 개념은 ‘노무현 질서’의 붕괴다. 상위 중산층의 행동주의에 기반한 대중 동원의 정치 원리는 촛불 시위를 통해 표출되었고, 뿐만 아니라 국민경선제를 채택한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으로 한국 정치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이 숱하게 지적했듯 정당 정치의 기반이 약한 한국 사회에서 노무현 질서는 정치의 문법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플랫폼 자본주의, 제조업의 쇠퇴, 메가 시티 대서울의 부흥과 지방의 소멸 등 변화 속에서 저자는 중산층으로의 ‘행복의 약속’(사라 아메드)이 파기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사회 계약‘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중산층의 재생산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지 못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것임을 설명한다. 포퓰리즘 정치가 판치는 판국에서, 정치적 부족주의의 형태(팬덤 정치)로 타 진영을 적대하고 혐오하는 형세에서 극단적인 강성 유권자의 눈치를 보며 민생 안정, 공공적 이익에 복무하지 못하는 정치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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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작년 대선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20대 남자’였다. 거대 정당 소속의 대선 후보자 두 명이 각각 안티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으로 포지셔닝해 적대적인 정체성 정치의 전선을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이대남 현상’은 선거의 판도를 뒤짚었다고 해석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귀동은 20대 남자 유권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이준석의 정치적 생명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듯했다. ‘목동 출신’이 말하는 공정과 능력주의, 안티 페미니즘을 통한 적대적 정체화의 집단으로서 20대 남성층의 지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취업, 결혼, 내집마련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이고 구범적인 시민의 자격을 획득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사회계약의 갱신을 통한 중산층의 복원을 역설하는데 현 사회가 ‘세습’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는 상위 중산층 계층과 노동자 계층 사이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중산층을 위한 정치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 아래 내려진 처방이었다.
작년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와 환멸을 느낀 중산층과 수도권 노동자층이 대거 이탈하며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고 조귀동은 지적한다. 민주당은 이렇게 상위 중산층의 정당으로 변모하며 호남 출신의 수도권 노동자 등 지지층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반면 정당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자영업자의 이익을 대변해줘야 하는 국민의힘(자유한국당, 새누리당 같은 이름만 생각나서 검색의 도움을 빌렸다…)은 이들을 잘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민생과 살림살이, 시민의 공공적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는 실종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검찰 개혁 같은 일에 목 매다는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 정부를 비판하며 네거티브 말곤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윤석열 정부 모두에 저자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정치를 정상화시키지 못하면 ‘뒤처진 사람들’, 부를 증식할 수 있는 사회적 사다리에 오를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의 열패감과 분노가 극단적 포퓰리즘과 만나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문제 의식을 하나 꼽으라면 이걸 말하고 싶다.
4.
노무현 레짐과 박정희 레짐의 정치적 시효는 황혼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중도층을 움직일 만한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정책과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의 다음 종착지는 ‘약속의 땅’인가. 이 책의 감상을 정리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할 만한 역량을 지닌 정치 세력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고 이상한 정치 정국을 해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만한 혜안을 지니지 못한 탓에 책을 읽고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저자의 뜻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않은 길’을 제시하는 정치 행위자의 꿈을 유심히 살피며 유권자-시민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다졌다. ‘논객 시대’(노정태) 이후의 정치 평론이 풍성하게 제기되길, 그렇게 좋은 정치 공동체에 대한 숙의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길 소박하게 희망해본다. 이탈리아를 좋아하지만 이탈리아보다 좋은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길 바라며 감상을 끝맺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