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호 시인의 산문집 방식 사전, 외계어 같은 젠지어를 배워볼 용기(?)가 생긴다. 먹기 아까운 최애 요리처럼 설레며 펼쳤는데, 프롤로그 읽다가 이미, 벌써, 너무 웃었다. 배 근육(?) 아프게 웃어본 게 아주 오랜만, 엄청 두꺼운 사전이었음 좋았을 걸... 읽기 아깝다.

“외로움, 불안, 정체성에 대한 질문. “너는 여전히 너야?”라는 물음은 (...) 유독 이들에게 절실하다.”
엠지Millennials와 젠지GenerationZ 세대로 분류되는 가족 구성원들이 있지만, 내게 X세대란 구분이 별 의미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딱히 세대별 특징에 관해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젠지 유행어는 그걸 재미있어하는 내 또래 친구들에게 더 많이 들었다. 너... 괜찮은 거니... 라고 묻고 싶을 만큼 이상한 표현들도 있었다. 그럴 때 확인 겸 아이들에게 뜻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주곤 했다.
내가 쓸 일은 없을 것 같은 곧 사라질 유행 같지만, 알게 되는 표현들이 늘어가니, 어떤 배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의사소통을 하는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그 의문을 기대 이상 속 시원하게 파헤쳐주는, 시인의 글이라니, 이런 즐거운 호사가 없다.
“밤티는 (...) 저건 추해, 저건 미감이 없어, 라고 선을 그으면서 그 선 안쪽에 있는 나는 안전하고 세련된 존재라고 믿고 싶은 욕망이다. 혐오는 늘 그 안에 자기 확인의 구조를 품고 있다.”
읽다보니, 아는 건 없이 선입견만 가졌다는 깨달음이 컸다. 그럴 거야, 라고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젠지들의 생각, 이해, 태도에 놀랐다. 대화가 불가능한 채로 편견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건 순식간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크게 반성했다.
한편, 어떤 면면은 내가 늘 바라던 외부 세계의 조건들이라서 또 놀랐다. 자발적으로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전시되거나 소비되는 무대가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 평가에 질리고 지치는 기분. 도대체 인간 활동은 어디까지 줄어들어야 하는 건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절대 안 되는 건지, 온갖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자동화시키는 상품들에 대한 불만 등등.
“그들이 우슐랭에 열광하는 건 단순히 맛집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광고 냄새가 나지 않는 무언가가 간절했던 것이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살았고, 광고에 익숙하고, 상품 저항성이 적다고 생각한 세대인데, 젠지 세대가 광고를 극혐하고, 아날로그 노스탤지어를 가진 채 “불편함”을 오히려 동경하는 줄은 몰랐다. 또래들만이 아니라, 다른 세대의 생활 방식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다.
주류에 저항하고 부정하느라 결과적으로 현상도 본질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고, 그런 흐름의 한가운데서 실컷 경험하고 살다보니 오히려 그 세계의 한계와 거짓을 선명하게 파악할 능력을 갖추게 될 수도 있다.
매서운 재미가 가득한 글을 쓰는 이소호 시인이 X세대 사전은 안 써주시려나, 간절한 기대가 생긴다. 그 사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그 세대라 불렸을 때 살던 세상을 배우고, 다시 돌아가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