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대로라면 소심함은 나의 생존법이었다. 그건 내 숨통을 조이는 생존법이었다.”
창비청소년문학 작품들을 만날 때면, 청소년기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신간에 대한 설렘이 깊다. 그리고 대개 울림이 크다. 상대적으로 더 솔직하게 날선,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크게 휘둘리는 건, 청소년들 가족을 겹쳐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화로 나눌 수 있는 부분보다 당사자가 감당해야할 몫이 늘 더 크다는 것이 애틋하고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지켜보고 듣는 역할과 체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체념처럼 받아 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동안, 때론 호흡이 무겁고 힘들기도 했다.
“세상에 쉬운 인생이란 없어. 재수 없는 놈아.”
거대한 경쟁 시스템 속에 살아가면서, 나약함과 실패가 잘못도 단점도 자격 미달도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어른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충분한 도움과 힘이 되는 지도 참 의문이다. “나약한 것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었던 주인공의 심정은 어른으로 사는 삶에도 잔존한다.
다만... 바란다고 지워지지도 않고, 바란다고 완벽해지지도 못한다. 다정한 이야기만으로는 허상처럼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 체온을 품은 사랑을 전해주고 나누던 존재들과는 매일 이별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고, 대책도 없이 그 순간이 닥치기도 한다. 산다는 게 모조리 잃어버리는 과정 같아서 힘이 빠진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 숨 막히게 최선을 다했어. 이 고통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있다면 계속 살아가라는 뻔한 응원을 계속 하고 싶다. 자꾸 증명을 요구하는 타인들의 무례 따위는 무시할 힘을 키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서 작은 성공을 경험하면서 기운을 차리라고, 그렇게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인 매일 하루의 일상을 만끽하라고 응원하고 싶다.
<호구>의 주인공이 천천히 일상을 되찾기 시작한다.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이야기의 마무리다. 어른들이 만든 수많은 지옥에서 살아가는, 이미 상처가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모쪼록 현실에서도 자신들만의 삶을 찾고 지키고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돈과 권력에 미친 전쟁의 포화가 너무 부끄러운 현 시점이라 더욱 간절히 바란다.
“설령 아주 불행해진다 해도 좋으니 자유롭게 저만의 인생을 살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