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의식할 수 없다. (...) 주목과 집중은 어떤 것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를, 어둠에 머무르기를 요구한다.”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
심리학을 전공한 숙부 덕분에, 전공과는 꽤 거리가 있던 융 심리학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 유학 간 영국에서, 분석심리학파인 제임스 힐먼의 특강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우연들로, 내가 이해하는 심리학은 약간의 융의 이론뿐이다.
제임스 힐먼은 여러 해 전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고, 내 책장엔 읽었으나 이해가 부족한 그의 책이 여러 권 있다. 2025년에 반갑게 만난 이 책에서, 융 심리학과 제임스 힐먼을 다시 만나, 추억을 담은 앨범처럼 재밌게 읽고 새롭게 배웠다.

자아ego와 자기self의 변별, ‘그림자’가 무엇을 뜻하는 지 재정리하고, 내 자신이 이고 지고 끌고 다니는 그림자를 생각한다. 각자의 그림자가 선택한 행위로 인해 드리운 전 세계적인 그림자가, 어떤 생명체보다 더 빨리, “거대한 미디어의 메시지 파도 속에서” 혐오스러운 “집단 그림자의 무대”를 형성하는 재난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이성의 세계 아래 또 다른 것들이 묻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를 인정하기 전까지 인류가 과연 어떤 일을 더 겪을지 알 수 없다.” 융Carl Gustav Jung
자유는 확대되고 개인성과 자율성은 확장 될 거란 오랜 기대와 달리, 세계는 “전체주의” 방식들을 선택 강화하는 듯하다. 개별 악행들의 종합적인 결과는 개인적인 특징만 가지는 게 아니라서, 무기력과 죄책감은 거대해진다.
서양의 오랜 주류 사고방식이던 이분법을 거부하는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와의 갈등은 자아 각성self-awareness에 꼭 필요”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스스로가 그러한 갈등을 각성의 계기로 삼기도 하고, 서로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배워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힘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한다).
“호모 호스틸리스는 교정할 수 없는 이원론적 사고를 지닌 도덕주의적인 마니교 신자와 같다.”
불특정 다수를 혐오하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의 행태를 이해할 여유와 힘이 내게는 참 부족하지만, 동시에 인류는 결국 ”사회에 적응한 비양심적 사이코패스가 패권을 잡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는 역사는 여전한 희망이다.
그림자가 없앨 수 없는, 존재하는 모두가 가진 구성요소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그림자, - 나의 사이코패스적 측면을 찾아내는 동시에, 사회적 권력을 취하려고 부상하는 사이코패스를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을 거듭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책이 주는 경고와 가르침이 엄정하고 시의적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