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옅어질 때쯤 들려오는 출간 소식에 매번 설렌다. 시집이 자리한 주변 공기가 향기로 채워지는 시간이 기쁘다. 이번 향기시집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윤동주의 작품이다. 시 120편과 산문 4편이 모두 실렸다.
베르가못, 편백, 자스민... 모두 좋아하는 향이다. 그 조합이 시차를 두고 퍼지고 머무는 동안에 시를 읽는 일이 호화롭고 행복하다. 여름 청귤 같다가 가을 숲 같다가, 청결한 겨울 침구에서 나는 안심이 되는 향 같기도 하다.

십대부터 읽은 시들을 다시 정독하는 일도 즐겁고,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나의 애호시들 목록도 흥미롭다. 호흡을 쉬는 순간들을 가늠하며 산문은 소리 내어 읽어보았더니, 윤동주 시인의 육성이 듣고 싶어진다.
식민지 시대의 젊은 시인이 뱉어낸 고통과 한숨이 지어낸 시어들, 그럼에도 맑게 비추어낸 존재와 풍경의 아름다움은, 향기가 모두 흩어져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 오래 불릴 노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어쩐지 겨울이 빨리 닥칠 듯해서, 남은 가을이 더 귀한 날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 올려다본 하늘이 눈물겹다. 이런 하늘을 하루 더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더 오래 살고 싶어지는, 마침내 그런 기분.
오늘밤에는 별도 봐야겠다. 조금 배우고 평생 좋아한 과학 덕분에, “별”이 아니라 “별빛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사라졌을지 모를 별과 마침내 도착한 별빛이 다른 실체라고 굳이 구분할 이유는 뭔가 싶다.
광복 80주년이 충분히 기억되지도 기념되지도 못한 듯해서 섭섭한데, 향기시집 덕분에 든든한 기억의 닻이 생겼다. ‘사과’가 등장하는 시 두 편을 처음 알아보았다. 다음 향기시집은 어느 시와 향이 만나 누구의 곁에 머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