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같이 욕해주기만 하면 날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니까 계속 그 따뜻함을 즐기게 되는 거죠.”
전시회에서 만난 작품처럼 표지를 오래 보았다. 직관적으로 다 이해되는 그림도, 관련 기억이 생각나는 그림도, 한참 보니 알아차린 그림도, 지시어나 상황을 잘 모르겠는 그림도 있다. 반갑고 재밌고 고맙고 궁금한 멋진 표지다.
“다이내믹”이 반가운 연령(?)이 아니고,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는 성향이라, 번다한 것들이 대개 버겁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다이내믹”하므로 품을 수 있는 기대가 분명 있다. 변화에 대한 상상은 분명 구체적인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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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쓰기 시작한 건 여러 날 전이지만, 마무리를 미뤄둔 사이, 인격 살해가 또 발생했다. 세력화된 범죄 폭력 집단을 언론에서 ‘중립’을 지키며 스피커 노릇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내란 시절이라서, 반복된 비극이 더 아팠다.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증오보다 나은 “우정을 만드는 방법”을 우리 사회가 제공해주는지, 실종된 대의(들)는 누가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혼탁한 공기를 여과 없이 들이켜야 하는 시간에도, 읽고 토론하고 쓰는 이들은 맑은 해법을 고민하고 토로한다. 그 애씀이 종이의 온기로 전해지는 책을 붙잡고 힘을 나눠받는다. 갖가지 노력을 하는 다양한 이들이 수없이 많고, 그들이 전하는 모든 소식이 모두의 수명을 늘리는 마법 같다.
“‘멸종이냐 평등이냐’ 중에서 택하라고 하면 한국의 우파들, 정책 결정자들은 멸종을 택하지 평등을 택하지 않아요.”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하며, 함께 읽고 토론하고 쓰는 저자들을 마음껏 부러워하며, 다른 시선과 태도를 배우고, 어렴풋하던 것들을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하는 시간이 고마웠다. 전혀 모르던 이슈나 소재도 있기 하지만, 한 사회에서 초래된 완전히 별개인 문제란 없는 거라고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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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 사건들을 고발하는 것에 머문 것 같지 않아요.”
마지막 내용이 한강 작가님의 작품들이라 참 좋다. 내란을 막을 수 있었던 시민사회의 힘 중에는, 내란 전 수상 소식이 전해 준, 용서받지 못할 내란의 위해가 전 세계에 전해지고 기록된 그 순간이 있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기억-고통-죄의식의 의무”는 지독한 고통이지만,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 “잊을 수가 없다”는 말이 사랑에서 비롯된 생생한 아픔이라는 걸 모른 척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다시 읽을 수 없을 것 같던 작가 한강의 작품들을 다시 펼치는 상상을 한다. 참 고통스러웠는데, 모두 ‘사랑’으로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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