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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본래 크나큰 이야기
  • 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 김지혜
  • 15,300원 (10%850)
  • 2024-12-06
  • : 43,581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기억을 찾아보니 아주 먼 과거 같기도 하고 상상한 장면 같기도 한 2019년 7월의 여름, 어떤 조우가 될지 몰라서 느긋한 기분으로 새 책을 시원한 집에서 읽게 될 순간을 고대했다.

 

앉아서 펼쳤으니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그 순간’을 털썩 무릎을 꿇은 장면으로 기억한다. 본문에 이르기도 전에, 프롤로그를 펼치자마자 나는 내가 차별주의자라는 자각을 변명도 못하고 삼켜야했다. “결정장애”란 표현을 사용한 순간들이 붉게 뜨겁고 아프게 얼굴을 달궜다.

 

첫 일독은 혼자였지만, 이제는 나보다 키가 더 큰 십대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었는데, 대입을 앞둔 큰 아이는 당분간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고, 중2가 된 작은 아이는 토익시험을 궁금해 한다. 나도 40대에 이 책을 만났으니 다그치지 말고, 운이 좋아 더 늦지 않게 배운 내 기록을 다시 남기려한다.



 

6년 만임에도 책은 강력하다. 표지 거울에 어른거리는 나를 요리조리 각도를 바꿔도 피할 수가 없다. 전면적 솔직함 말고, 표현형 몇 가지만 들키고 반성하고 변명하며 살고 싶은데, 내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차별을 인지하기 위한 최적의 기초공사처럼 단단한, 여전히 유효한 지적들이다.

 

“결정장애”란 표현은 다시 사용한 적이 없지만, 그 이후 얼마나 더 알아차리고 멈추고 설명하고 바꾸며, 차별주의적인 사유와 언행을 조금이라도 덜 재생산하며 살아왔는지, 가이드이자 의지가 된 이 책을 다시 꽉 붙잡고 상기해본다.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있다. “내가 선 자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놀랍도록 평범한 특권인 차별을 평생 알아차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기분 나쁜 농담처럼 들렸던 혐오와 차별과 폭력의 목소리들이, 어느새 구체적인 현실 위협이 되는 풍경을 지옥도처럼 목격하기도 한다.

 

먼 곳의 전쟁을 반대할 여유도 앗아가는 사회적 격변이 악몽처럼 벌어지기도 한다. 공정성과 평등에 관한 차분하고 끈질긴 논의는 고사하고, 하루 종일 속보를 찾아보며 하루를 견디다 지치고 황폐해진다. 언제쯤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을까 그런 절망감이 우울을 앞세워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이 더 이상 망하지 않을 것만 같아……' 그런 낯설고 말랑한 희망을 품고 싶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한 곳에만 서 있지 않고 어디든 찾아가서 연대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위계와 폭력과 능력주의의 목줄이 지우지 못한 차별의 증거들이다. 그쪽을 향하는 것만으로 내 삶의 풍경이 바뀌곤 한다.

 

두렵지만 다시 시도하는 용기, 질 것을 알지만 또 도전하는 용기, 이기지 못해도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것부터 꼭 하는 용기, 연대는 약하기 때문에 서로 내민 손들이라고 안심시켜주는 이들이 있다. 기대보다 더 많이 있다.

 

그 손들이 정의롭지 않은 현실의 부당할 수 있는 법들을 바꿔낼 거라 희망한다. 더 간절한 서로 다른 우리“들”이 더 약삭빠른 저들에게 지지 않을 거라고. 기후격변으로 인류가 끝장나기 전에, 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만큼은 평등해서 안도하며, 그 법을 준수하는 건전 시민으로 살아보고 싶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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