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사람이 파인애플 좋아하는 이유가 당장 알고 싶어지는 마성의 제목, 에세이 같았는데 소설이라 더 기대된다. 파인애플을 좋아하고 잘 먹지만, 일곱 개를 선물 받은 건 처음이다. 상자 크기에 놀라고 내용물에 압도당함.
각인되어 잘 안 잊힐 제목의 책과 낯선 파티에 초대된 듯 인상적인 거대한 선물이 평범한 목요일을 유쾌하고 특별한 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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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질문에 대한 답변:
“네, 파인애플 좋아합니다. 먼 아프리카 출신인 것도, 특이한 외모도, 열매가 아닌 부분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화분에 심으면 나무로 자라는 것도, 달콤한 유년 시절의 향을 품은 것도, 행복해지는 과육의 색도 다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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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상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도 한때는 이해하기 힘든 그 무엇일 때가 있지 않던가.”
결국엔 읽는 중간에 크게 웃고 말았다. 이 책이 만약에 정답을 맞히는 시험 텍스트였다면 나는 빵점을 받았을 것이다. 생전 처음 ‘소설’을 만난 이(異)세계의 존재처럼, 모든 단편이 생경했고 짐작하는 족족 다 틀렸다.
비슷비슷한 고민을 오래하고 살아가는 게 생명체가 묶인 저주라서, 그 설정이 문득 숨 막히곤 하는데, 이렇게 낯선 어떤 것을 만나는 시간이 뜻밖에 숨통을 열어주는 듯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존재가 된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제는 수시로 자신의 주위에 끊임없이 경계선을 긋는 듯했고, 그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거듭 확인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뭘 좀 배우고 짧지 않게 살아봐도, 나는 실재하지 않거나 개념으로 굳건해진 ‘모든 경계’에 수없이 갇히고 가두고 사는 어리석고 게으른 존재다. 이래서야 필연적으로 만날 삶과 죽음의 얇은 경계를 의젓하게 넘을 수 있을까.
문학이 내어주는 위안의 호흡법을 느끼며 다른 분들도 즐겁게 읽으시기를 바란다. 독특한 창작의 세계로 유쾌하고 노련하게 이끌어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다른 작품은 뭘 쓰셨을지 찾아봐야겠다.
“민아가 파인애플을 좋아했던가. (...) 먼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가 보였다. (...) 춘천을 지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