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후 아버지가 이유 없이(?) 사주신 책이다. 과학을 전공하는 자식에게 왜...? 의문을 품고 받은 기억. 읽긴 했지만 기억을 뒤져봐도 남은 것, 배운 것이 초라하다.
30년이 더 지나, 아버지 돌아가신 후, 다른 표지로 이렇게 재회하니 눈물이 쑥 날 것 같았는데,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 가슬가슬해서 좋은, 아름답고 따스한 종이표지... 아버지 손을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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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다르기도 하지만, 처음 읽는 것처럼 신기해하며 재밌게 읽었다. 인문학도 그렇지만 문학은, (대단하지 않게 살아왔어도) 나이 먹은 것이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혀준다.
평화와 사랑을 거부하는 종교가 없고, 짧은 단 한 번의 삶을 위무하지 않는 종교가 없으니, 믿음이란 유약한 우리에게 전하는 스스로 다짐하는 결심과 격려, 혹은 간절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선업을 중요시하고, 윤회를 통해서라도 실수와 잘못을 바로 잡으며, 그에 따른 대가나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다. 물론 더 이상 따라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방식의 관계 규정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건 세세한 다름이 아니니까.
“무릇 나라는 백성의 것이요, 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오. 천명이 임금에게서 떠나고 민심이 임금에게서 떠나간다면 비록 몸을 보전하고자 한들 어찌 보존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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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친절한 각주들 덕분에, 아는 바가 적은 시대와 종교와 어휘들에 대해 정독하며 배우는 게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최초의 한문소설”을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된 기분도 들었는데, 그마저도 반가운 시간이었다.
유불선과 성리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적어서 오히려 오독을 덜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설집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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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문제를 풀던 시절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문학으로서의 금오신화와, 저항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간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도 만나보았다.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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