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 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일기장을 숨기지 못할 테니까.”
전혀 모르던 작가의 작품을 첫 대면하는 순간은 떨리고 설렌다. 더구나 “금지된 일기장”이란 제목이 주는 숨 막히는 ‘어떤’ 느낌 혹은 써야만 살 수 있는 여성의 형편에 대한 짐작이 긴장감을 더 높인다.
“일기장의 새하얀 백지는 나를 매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혼자 거리를 거닐 때처럼 말이다.”
명료한 문장들인데 어찌나 선동적인지, 남의 일기장을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숨기고 발각을 두려워하고 욕망을 포기하고 현실에 거듭 순응하는 주인공 대신 깊은 한숨을 병이 날 것처럼 거듭 쉬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나만을 위한 서랍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원작의 필력과 번역의 힘은, 국내 첫 소개된다는 이 작품을 불온하고 고혹적으로 만들었다. 작가의 시선은 두려울 만큼 깊은 통찰력을 가져서, 스스로도 부정하는 욕망은 가릴 것을 찾지 못한 채 낱낱이 드러난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면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해야한다”
유학시절에, 성소수자이며 베네치아인venetian인 동료는, 자신의 결혼이 “행복한 감옥”이었다고 했다. 일견 평온해 보이는, 폭력적이지 않은 배우자와의 결혼 역시, 혼인 계약 내용들에 맞춰 거세당하지 않은 여성이 지닌 다른 욕망을 어떻게 질식시킬 수 있는지, 제도란 얼마나 촘촘한 사회적 억압일 수 있는지가 평범한 일기 문장들 속에 어두운 핏자국처럼 기록되어있다.
“8월에 일주일 쉬었다고 10월까지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언어가 곧 사유라는 점에서, 쓰는 여성이 생각 하지 않고, 생각을 더 확장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에 갇힌 채, 사유함으로써 다른 욕망과 세상을 상상하게 된 존재는 어떤 생지옥에 갇히게 될까.
“언제나 현실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는 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괴로웠다. (...) 깊은 사유 없이 어떻게 올바른 기준에 맞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안전망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고통의 상쇄가 시작된대도, 바깥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떤 위험이고 괴로움일지는 모를 일이다. 혹은 20세기에 작가가 투옥되었듯이, 다른 이들 역시 저항의 대가로 다른 감옥에 갇히게 될 지도.
소설처럼 긴박하게 재밌고 일기처럼 내밀하고 솔직한 이 작품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찾아가보고 싶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가장 먼저 첫 페이지에 적힌 내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출간을 열렬히 반깁니다. 다른 작품이 있다면 더 소개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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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s of Alba de Céspedes, Credited by Mondadori Port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