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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본래 크나큰 이야기
  • 시간이 내게 말을 걸면
  • 신호철
  • 9,900원 (10%550)
  • 2024-01-31
  • : 160


 

봄을 반기지 않는다, 는 말을 너무 자주해서 그게 미안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목련이 피어나는 짧은 계절엔 설렌다. 잎이 없는 꽃을 올린 가지들의 서늘한 체온이 좋다. 올 해엔 병에 걸린 듯 졸고 자느라고, 실사 목련보다 목련 사진을 더 많이 보았다. 봄을 찬미하는 시를 읽고 더 찾아 읽는다. 그러다보면 나도 봄을 찬미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 모르니.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느새 4월이었고, 비가 자주 왔다. 어제도 오늘도 비가 왔다. 4월엔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이 피니까, 봄비가 주는 느낌이 좋으면서도 꽃이 아깝다. 산책길 라일락은 비에 젖어서도 어찌나 향기롭던지. 몹시 설레며 덕분에 행복했다. 비와 꽃향기가 슬픈 꿈같아서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3월에도 4월에도 여름을 미리 만난 듯한 날이 있었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일교차도 맛보았다. 아직은 남아 있는 계절이라지만, 절기는 의미를 많이 잃었다. 도둑맞은 계절이라기엔, 인간 스스로 저지른 짓들이 너무 많다. 자신을 지성적인 존재라고 여기면서도 생각 없이 하는 수많은 것들. 알람보다 10분, 20분 일찍 일어나 여명을 보는 하루는 종종 남은 시간의 가늠자 같다.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여기저기의 통증과 흉터라면 여전히 운이 좋은 편이다. 시 속에 등장한 맹인을 나는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래 보지 못했다. 다들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4월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에도, 장애인들은 구속당했다. 누구누구는 이동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회, K-국격.

 

가을에 지는 잎들을 보면 속이 후련하다. 마치 할 일 다 하고 쉬러 가는 모습이랄까. 무거운건 마지막 하나까지 다 벗어버리고 개운하게 가볍게 존재하기만 하면 평온의 시간. 봄에 지는 꽃도 마찬가지겠지만, 낙화는 늘 조금 서럽다. 개화한 모습 그대로 떨어져 밟히는 장면이 덧없다. 봄비가 오고 난 다음의 축축함은 더 그렇다. 말릴 방법은 전혀 없지만. 누구의 삶처럼 꽃도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는 건 누구에게나 있다. 잘못 기록되었거나 잘못 출력되는 기억들도 누구에게나 있다. 섬망과 치매와 파킨슨이라는 명명을 가진 것들만 어딘가에 갇힌 기억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약이라도 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는 빈 공간이 숭숭 많아서, 걷다 한참을 앉아 망연해했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할 것들, 기억할 것들은 많아서, 4월엔 더 많아서.

 

시집 한 권으로 모든 계절을 만나고, 비슷한 삶도 만나고. 이제 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흐린 일요일 오후의 산책은 대개 고적해서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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