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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본래 크나큰 이야기
  •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조이스 박
  • 15,120원 (10%840)
  • 2024-04-25
  • : 6,100

 

‘숲’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도시생활자들이 떠올린 숲은 어디일까. 그 숲은 가로등과 긴 의자가 촘촘하게 배치된 곳이 더 많을 것이고, 깊은 야생은 아닐 것이다. 그런 숲도 야생동물도 거의 없는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숲, 그건 인류가 거의 없애버린 자연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언급하듯 제거하거나 거부해온 사회화되지 않은 다른 측면의 인간 본성일 수도 있다.

 

“여성은 내면의 숲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떠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정이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다.”

 

서양가부장문명은 자연과 여성을 동시에 대상화하고 위계의 아래에 배치시켰다. 자연은 속절없이 제거되어왔고, 여성은 생존을 위한 순응과 저항을 동시에 이어왔다. 내용은 많이 알고 있으나, 세세한 표현들과 메시지는 잘 모르는 동화들을 새로 쓴 책이 아니라 해석, 분석, 비평한 내용이다.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와 계모 왕비, 백설공주는 모두 대상화된 여성들의 원형이다.”

 

“대상화되는 자리는 여신의 제단이 아니다.”

 

겁쟁이에다 사회화가 강하게 된 나는 움찔 놀라며 만나게 되는 거침없는 표현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 시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내가 경험한 세계와의 괴리가 그만큼의 거리감으로 느껴질 뿐이다. 물론 내가 운이 좋았을 뿐,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떤 폭력에 시달려왔는지를 몰라볼 정도로 협소하지는 않다. 사례와 이야기만으로도 두렵고 아플 뿐이다.


“로맨스라는 기제에 기만당하면, 자신의 욕망 대신 남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야 한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여러 문학 사례들이 많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관한 글은 어린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되어 만난 무척 좋아한 작품이라서 특별히 더 흥미롭게 읽었다, 짐작한 내용도 일부 있지만, 가오나시가 “치히로의 내면에 있는 거대한 결핍”이며, 빨간 모자의 늑대라는 생각은 못했다.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부모(어른들)의 사정에만 온전히 따른 전학과 이사, 치히로의 결핍. 이름을 잊고 상처 입은 존재들. 남을 도우며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전학 간 학교에서보다 더 낯선 존재들과 맺은 관계는 현실의 관계 설정도 돕는다. 치히로는 그 이세계의 ‘숲’에서 성장을 위한 고난을 치른다.

 

서양의 수많은 신화와 동화 속에서 늘 화가 나있는 ‘용’은 일견 남성성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남성 영웅, 왕자, 구원자가 해치우는 ‘용’과 ‘뱀(메두사)’가 여성이라고 해석한다. 남성이 길들일 수 없는 여성의 본성을 제거하고 순종적인 사랑받을 만한 성향만 남은 여성을 구출(?)하는 반복되는 가스라이팅. 그런 이야기를 접하고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러나 깊숙하게 거부와 제거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스며든다.

 

“용을 죽이고, 발가벗고 무기력한 공주를 구하는 일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건네는 강력한 메시지이지 이데올로기다. (...) “네 속의 연약한 부분만 골라서 사회에 편입시켜 살게 하겠다”라는.”

 

이야기와 해석이 과장이거나 망상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실 역사에서 마녀사냥의 사례를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마녀의 이미지를 이야기가 어떻게 굳혔는지,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는 치료사 여성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2024년에도 남성권력이 거부하는 여성의 낙태권은 어떤 유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지를.

 

“과거에 치료사 여성은 약초에 대한 지식으로 피임과 출산과 낙태를 도와주었다. 즉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주체성을 갖게끔 하는 위험한 지식을 가진 것이다.”

 

인간과 인간사회를 배우기 위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인간은 동물과 자신을 분리시켰지만, 그 세월은 실은 아주 짧다. 인류의 의식과 역사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넘나드는 존재들,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닌 존재들이었다. 인간이 그은 수많은 경계들, 그 선이 두려움을 상징한다면, 누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찬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이익을 얻는 지도.

 

차분하게 통찰을 이어나가자. 읽고 쓰고 대화를 나누자. 생명을 잇고 삶을 주관하는 신화 속 여신들처럼 계속 뜨개질을 하자. “무엇이든 뜨고 싶은 걸 떠!” “무엇이든 쓰고 싶은 걸 써!” “지지 말고 서로를 조금 더 구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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