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봤다. 정말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들 대부분은 서로 단절된 채,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라는 건 다양한 목적을 좇아, 수많은 근심과 함께 흘러가는 것일 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속사정은 알지 못한다”
서른여섯 살 마야. 이혼했고 열네 살 아들을 키운다. 양육비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생활비와 학비는 혼자 감당한다. 문학을 좋아해 한때 소설을 써보려고도 했다. 먹고살아야 했고, 돌봐야 할 아들이 있었고, 일은 쉴 수 없었다. 그렇게 마야는 원해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시작에는 석 달 전 이스탄불 공항에서 만난 87세의 독일계 미국인 막시밀리안 바그너가 있었다.
어떤 얼굴은 웃고 있어도 슬픔을 숨기지 못한다. 마야가 공항에서 마주한 얼굴이 그랬다. 여행 가방과 바이올린 케이스를 나눠 든 노교수. 지치고 슬픔에 잠긴 듯한 눈빛, 그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 이전에 만나던 손님들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마야는 금세 알아챘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고 수행하는 계약직 공무원인 그녀에게 손님을 마중 나가는 일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바그너가 묵을 숙소로 향하는 택시 뒤로 낯선 차 한 대가 계속 따라붙는 게 아닌가. 우연일까. 이 교수가 혹시 스파이는 아닐까. 뒤따르는 차는 정보국 차량인 걸까. 갑자기 요원들이 들이닥쳐 교수를 납치하는 것은 아닐까. 공상하기 좋아하는 마야의 머릿속에는 벌써 위험한 이야기가 한 편 펼쳐진다.
하루는 바그너의 제안으로 둘이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대화는 1930~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히틀러 정권을 피해 이스탄불로 온 유대인 교수들과 그 시절 튀르키예를 둘러싼 국가 간 정보전의 역사가 바그너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갔고, 하필 59년 만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온 걸까. 마야의 의구심은 커지기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행의 정체도 드러난다. 정보기관 소속이라는 세 사람이 총장실에서 마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바그너 교수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고하라는 것.
어느 날 이른 새벽, 바그너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걸까 싶었는데 목적지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이스탄불 북쪽 흑해 연안의 쉴레였다. 쉴레 부근에 이르러 바다가 보이자, 바그너는 차를 세우게 한다. 언덕 뒤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바이올린 가방과 ‘나디아에게’라는 글귀가 적힌 화환을 들고 내린다. 강추위 속,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흑해 해변으로 87세의 노인이 바이올린 가방과 화환을 들고 걸어간다.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야와 운전기사는 두 눈을 의심했다. 바그너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화환을 바다에 던진 그는 눈보라 속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도 돌아올 답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그는 같은 곡을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곡은 같은 곳에서 자꾸 막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또 그곳에서 멈춘다. 왜 하필 이 추운 날 바다까지 찾아왔는지도, 왜 바이올린을 켜는지도 아직 알지 못한다. 그저 매서운 바람과 거센 파도 속에서 어디론가 소리를 보내고 있는 바그너의 모습만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바다는 계속 파도치는데, 이 노인만 그곳에 붙들려 있다.
아, 길고 긴 하루가 참으로 고단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일에 놓인 건지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일만 잔뜩 안고 있는 마야는 온몸이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피곤에 절은 머리를 뉜 베개가 눈물로 젖어버린다. 꿈속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 오빠, 할머니와 함께했던 평온한 날을 보낸다. 온몸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이 편안함. 깨고 싶지 않은 꿈. 그런데 마야에게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르메니아인이었던 할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강제 이주와 학살을 피해 다른 이름과 종교로 살아야 했다. 크림반도의 튀르크계 주민 후손인 외할머니에게도 숨겨야 할 과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으로 넘겨질 위기에 놓였고,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한 사람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뿌리를 숨겼고, 또 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숨겼다.
나치와 유대인, 독일 학자들의 망명,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학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콕콕 박히면서 책장이 쉼 없이 넘어갔다. 이상하게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아니면 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마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 사람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들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거대한 역사나 이스탄불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면 버스에 몸을 싣고 지랄맞은 직장으로 향해야 하는 사람.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과의 거리를 좁힐 기회만 엿보며 나름 무진 애를 쓰고, 이 녀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엄마이면서도, 시간이 조금 남으면 괜히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고, 삶의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면 뭔가 더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 대단히 평온할 것도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마야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서인지, 이 소설이 꽤 가까이 느껴졌다. 솔직하고 불평도 많지만 그런 마야가 나는 좋았다. 어쩌다 생기를 보이면 내 가족일처럼 반갑기까지 했다.
마야는 힘들 때면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바그너를 만나면서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찾아가는 일이 되었다. 가족에게 묻혀 있던 이야기에서 튀르키예의 역사까지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결국 쓰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생겼다. 무엇이 그녀를 다시 쓰게 만들었을까. 곧 마야가 탄 비행기는 보스턴에 착륙한다. 그 전에 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나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주제에 관해서 쓰고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로 망명 온 독일 교수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답했다. 그녀는 놀란 듯 그런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p. 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