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과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도입부에 확 빨려 들어가 100쪽을 쭈욱 읽어버리게 만든 <사탄탱고>의 매력에 빠졌던 작년의 그 짜릿함을 기억한다. 황폐한 마을, 곰팡내 가득한 방,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그 음울함이 아직도 잔재처럼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데, <죔레는 거기에>를 펼치자 웬걸, 점심으로 먹을 감자국수를 만드는 한 노인이 나온다. 예상 밖이다. 뭔가 소박하고 인간미도 느껴지고, 첫인상부터 내가 알던 작가의 느낌과는 꽤 다르다. 그런데 또 가만히 읽고 있으면 이 편안함 속에 놓치기 힘든 미세한 긴장감이 있다. 대체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도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몰입해서 읽다 보니 결국 이러나저러나 역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이 맞긴 하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과도 거리가 멀어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산 위의 집에서 살아가는 올해 아흔두 살의 은퇴한 전기 기술자 요제프(요지 아저씨)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전기 기술자와 유랑 가수, 전직 교사, 퇴역 군인 등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한 건 모두가 그를 “폐하”라고 부른다. 요제프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온 왕위 계승자라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집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를 헝가리 국가의 기틀을 세운 중세 마자르계 왕조, 아르파드 왕가의 마지막 후손으로 여기며 왕으로 추대해 왕정복고를 이루려고 한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고, 정치적 계산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가 더없이 좋은 상징이기도 하다. 영 느낌이 싸하다. 어쨌든 숱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요제프는 왕좌에 오르는 일에 별다른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정작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랑했던 사람들, 가족, 그리고 한 인간으로 살아온 긴 세월에 관한 기억들이다. 무엇을 잃었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무엇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지.
처음에는 요제프가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은둔자 같은 노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국회와 대주교, 유럽연합 관계자, 독일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논리를 끊임없이 세상에 던졌다. 자신을 왕위에 올리든지, 아니면 그에 걸맞은 존엄을 인정해 연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답은 오지 않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요제프 역시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헝가리. 요제프는 독일 병사들의 무덤 6천 기를 찾아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 훈장에는 당시 헝가리가 겪어야 했던 복잡한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런데 왕위 계승자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노인의 현실은 영 빠듯하다. 가진 돈의 거의 전부를 전기료로 쓰면서도 그는 “더 이상은 불을 때지 않겠다”며 전기난로를 사용한다. 전기료가 그렇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왜 굳이 전기난로를 고집하는 걸까. 그건 그렇고 잔뜩 모여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곁들인 와인 탓인지, 세월이 무거워진 탓인지 이내 잠에 들어버린 요지 아저씨. 거대한 역사와 한 사람의 초라한 일상이 한 몸 안에서 겹쳐 보이는 모습에 착잡함을 느끼며 눈길을 거두기 어려운데, 역사학자 버디지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요제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말을 꺼낸다.
“우리에게는 아르파드 왕가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 좋은 서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왕이 필요하고, 당신은 바로 그 자리에 딱 맞습니다.” (p. 68)
여기서 ‘좋은 서사’라는 말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지 아저씨에게 지금 왕좌에 오르는 일보다 더, 더,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된 가족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해 질 녘 테라스에 앉아 늦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평온한 일상. 그 아름다운 풍경 너머로, 늘 목에 큰 가시가 박힌 듯한 심정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눈앞의 풍경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만 같다.
더 이상의 전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여러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저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움직이듯 세상과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한 요지 아저씨의 시선과 말을 따라가면 될 뿐이다. 사뭇 진지함이 오가는 상황에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읽다가 난데없이 입에서 어이없는 실소가 터지게 만들기도 하는 이야기에 웃어? 울어? 말어? 싶은 순간들. 최대한 웃음 포인트를 살리고자 했다는 번역가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즐기기만 하면 됐다. 에구, 이렇게만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쉬워, 기억에 남는 이야기 조금만 더 담고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요지 아저씨가 오늘날의 삶에서 사라진 도덕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직해지시오, 용감해지시오, 인내하시오, 그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 이러한 고귀한 원칙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시오, 이것이 단순한 이성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바이며, 이것만 따르면 충분하고, 다른 어떤 지침도 필요하지 않소.” (p. 161)
요지 아저씨가 말하는 삶의 원칙은 거창한 교리나 신념이 아니라, 의외로 단순했다. 정직할 것, 용감할 것, 인내할 것. 그런데 이게 참 별것 아닌 말 같으면서도 쉽지가 않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기, 두려워도 해야 할 말을 하기, 금방 달라지는 게 없어도 조금 더 견디기.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막상 내 일이 되면 또 달라진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는데, 매번 그쪽을 선택하며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저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는 쪽으로 기울여 보는 거다, 오늘도.
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그 인생 안에 도저히 들어맞지 않는 일이 항상 하나쯤은 있어요, (p. 274)
이 책의 번역가 김보국 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죔레는 거기에>의 경우 외국어로는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선뜻 번역 의뢰를 받고는 덥석 번역을 맡겠다고는 하였으나, 헝가리 내에서 작품 관련 논의를 살펴보던 중, <사탄 탱고> 이후 점점 더 난해해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의 정점이라는 어느 독자의 댓글을 읽고, ‘큰 나무에 도끼가 제대로 물렸다’라는 헝가리 속담이 떠올랐다.”
번역가에게는 처음으로 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호사였다면, 독자인 나에게는 그 번역을 통해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한 여름날의 즐거움이었다. 헝가리를 사랑하는 번역가가 헝가리를 사랑하는 요지 아저씨의 마음을 헤아리고, 헝가리를 사랑하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글을 우리에게 전해준 것 같은 느낌. 헝가리를 향한 마음이 한 사람에서 또 한 사람을 거쳐 내게까지 건너온 것 같다. 작가의 또 다른 매력, 아름답기까지 한 문장을 만날 수 있었고, 요지 아저씨와 그의 심장, 죔레까지 한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