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곰돌이님의 서재
  • 야만스러운 탐정들 1
  • 로베르토 볼라뇨
  • 12,420원 (10%690)
  • 2012-06-15
  • : 1,203
내가 접해 본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가 유일하다. 길고 긴 이름 공격에도 불구하고 뚫고 올라오는 매력과 재미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로베르토 볼라뇨까지 여러 권을 책장에 채우기만 했는데, 요즈음 무거운 소설만 읽었던지라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찾다가 예상보다 이 책을 빨리 펼쳐보게 됐다는 별 필요도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멕시코의 세계로 들어가야겠다.

2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1권은 다시 두 파트로 나뉜다. 1부는 열일곱 살의 시인 지망생 ‘후안 가르시아 마데로’의 일기로 시작한다. 시가 쓰고 싶었으나 등 떠밀리듯 법대에 입학한 마데로는 기성 시인 알라모가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교 안 시 창작 교실에 발을 들인다. 그런데 워낙에 패기가 지붕을 뚫고 대기권을 향해 직진하는 마데로인지라 알라모의 말이 영 와닿지가 않는다. 가고자 하는 방향도 달랐던 것 같고.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이 발간하려는 잡지에 참여할 시인을 찾는다며 ‘내장 사실주의’인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가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이들이 누구인가. 기성 문단의 질서에 순응하느니, 그 판을 한 번 뒤집어엎고 자기들 방식대로 시를 써보겠다는 청춘들이다. (참고로, 벨라노와 리마는 로베르토 볼라뇨와 그의 친구이자 동료 시인인 마리오 산티아고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한다.)

아니, 그런데 왜 이름도 영 껄쩍지근한 ‘내장 사실주의’를 만들었을까? 정확한 이유야 하나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당시 이들에게는 부모 세대처럼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영 답답하게 느껴지고, 사회뿐 아니라 기존 문단 역시 현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세계처럼 보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반항심과 시대의 분위기가 내장 사실주의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전투가 시작되었다. 내장 사실주의자들은 알라모의 비평을 문제 삼았다. 알라모도 내장 사실주의자들을 초현실주의자들의 아류나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판했다. (p. 17)

알라모의 눈에는 이 젊은이들이 그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초라한 아류’로 보일 뿐이지만, 진짜 삶의 바닥에서 건져 올린 시를 쓰는 건 바로 자신들뿐이라는 듯 벨라노와 리마는 굴하지 않는 기세로 대응한다. 안 그래도 교실 구석에서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마데로에게 벨라노와 리마 같은 선배들의 등장은 가슴 속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렇게 내장 사실주의자들의 품으로 쏙 빨려 들어간 마데로의 일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공부는 안 한다.

밤새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찌든 공간에서 자신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책들을 돌려 읽던 70년대 멕시코 변방 반항아들의 뜨겁고 퀴퀴한 골방 공기가 날 것 그대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들에게 문학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자기들이 여기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꽤나 절박한 싸움에 가까워 보였다. 완고한 권위의 벽을 쌓아 올린 기성 문학의 세계에 이들은 잘 닦인 한복판으로 멧돼지처럼 들이닥친 존재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따금 치기 어린 시절 특유의 거들먹거림과 마초적 허세, 여기에 거침없는 농담까지 첨가된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괜히 에너지를 쏟을 때가 (자주) 있는데, 그 소란스러운 난장판 속에서도 중심을 꽉 잡고 있는 건 시와 시인들이다.

독특하게도 2부는 1976년부터 1996년까지를 오가며 벨라노와 리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다만 1권에서는 1979년까지의 이야기만 담긴다. 흥미로운 점은 벨라노와 리마가 누구의 기억을 거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그려진다는 것. 그만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도 제각각이다. 그중에는 작가가 자신의 분신 벨라노를 “내가 본 사람 중 최고 미남이었다. 축구를 할 때는 웃통을 벗어 상반신을 드러냈다. 그리스 신화 잡지에 나오는 그리스인과 똑같다고 생각했고, 어떤 때는 가톨릭 성인 같았다. (p. 222)˝라고 기억하는 고등학교 친구의 눈을 빌려 자신을 조각상으로 박제해 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뭐, 그렇다고 하니 그런걸로... (풉)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풋풋했던 시절의 기억 가운데 유독 눈길이 머물렀던 것 중 하나는, 나이 차이는 한참 나지만 벨라노와 친구처럼 지냈던 ‘아욱실리오 라쿠트레’의 이야기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1968년 멕시코시티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이 국가의 폭력 앞에 쓰러졌던 공포가 선명히 박혀 있다. 탱크가 들이닥치고 전경들이 캠퍼스를 짓밟던 야만의 시간, 사람들을 어디론가 실어 나르는 트럭을 화장실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던 아욱실리오는 화장실 문을 꼭 걸어 잠근다. 배고픔은 수돗물로 채워가며, 기억나는 시를 암송하기 시작한다. 오직 ‘시’라는 마지막 끈 하나를 붙잡은 채 그 지옥 같은 며칠을 버텨냈다.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은 늘 웃음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내 치마 때문에 웃고, 내 홀태바지 때문에 웃고, 줄이 간 내 스타킹 때문에 웃고, 점점 금발이 사라지고 흰머리가 늘어나는 내 프린스 밸리언트 헤어스타일 때문에 웃고, 멕시코시티의 밤을 세심히 살피는 내 푸른 눈 때문에 웃고, 대학의 이야기들, 즉 부상(浮上)과 추락, 개무시, 승진탈락, 납작 엎드리기, 아부, 허위 업적, 멕시코시티의 밤하늘에서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는 흔들리는 침대들 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내 분홍빛 귀 때문에 웃었다. (p. 310)

그런 시간을 견뎌낸 끝에도 “내가 익히 아는 그 하늘 아래에서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멕시코의 모든 시인과 함께”라던 처연하면서도 단단한 그녀의 고백이, 덥고 습한 여름날 방 한구석에서 책을 붙잡고 있는 곰 한 마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아까는 허세 가득한 10대 시절 특유의 찌질하고 하찮은 모습에 피식 웃어가며 읽는 잔재미를 야무지게 뽑아먹고 있었건만, 지금은 마음이 찌릿거리고 뜨거워지고, 아 왜 이래 ㅠㅠ

참 희한하다. 나와는 접점도 거의 없고, 호감 가는 사람도 그닥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왜 감겨서 보고 있는 건지.
누군가는 마리화나 연기 자욱한 별채에서 겉멋 든 시를 읊조리고, 또 누군가는 내일의 삶조차 막막한 거친 길바닥에 선다. 당장 주머니는 텅 비어 있을지언정 차가운 다리 밑에 걸터앉아 밤하늘의 달을 보고, 싸구려 와인 한 잔에 밤새도록 낭만을 속삭이던 청춘들. 그런 모든 것이 뒤엉켜 있던 1970년대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볼라뇨도 이런 시절을 지나왔겠다는 생각에 더 실감이 났다. 어딘가에 미쳐 활활 불태우던 그 대책 없는 뜨거움과 유쾌함, 그리고 그 뒤에 남는 묘한 헛헛함까지. 그런 한 시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분. 꽤 괜찮았다.

아니, 그러고 보니 정작 이들이 그토록 찾아다니는 여성 시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는 언급도 안 했군...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