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책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이왕이면 대략 짐작되는 이야기는 조금 미뤄두고, 새로 알아가는 즐거움 쪽으로 마음이 더 뺏기곤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로 다시 들어가게 만드는 소설이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이 그런 쪽에 가깝다. 카리브해의 풍경, 남보다 못한 애증의 혈연, 식민지 경험의 흔적. 어떤 이야기일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그 문장만큼은 쉽게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더 깊은 고통을 마치 당연한 일상처럼 풀어내는데도, 어떤 문장들은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화를 내고 울부짖으며 쏟아내도 이상하지 않을 처절한 순간에도, 제 갈 길을 똑바로 가는 사람처럼 비명 한번 없이 냉소가 흐르는 담담함. 감정적으로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그 무심한 태도가 못내 마음에 남았던 걸까. 그렇게 나는 다시 수엘라라는 아이의 삶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받는 상처는 상처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수엘라. 태어나 처음으로 읽어낸 말이 자신을 억압하는 ‘대영 제국’이었던 아이. 아프리카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카리브해 원주민의 지워진 흔적까지 짊어져야 했던 수엘라는, 같은 처지인 사람들 틈에서도 ‘우리’였던 적이 없는 이방인이자 생의 밑바닥에서도 끝내 스며들지 못한 채 밀려난 섬이었다. 제국도, 이웃도, 그 어떤 타인도 그녀를 온전히 품지 않았기에 일찌감치 직시했을 것이다. 이 세계에는 처음부터 자신을 위한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남의 손에 키워지며 겪은 멸시와 설움이 어찌 가볍겠냐만, 수엘라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 그것은 이미 자신에게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것과 같았으므로. 그런 수엘라에게 유일하게 다정한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의심 속에 붙잡혀 있고 패배자인 우리는 비현실적인 모든 것, 인간적이지 않은 모든 것, 사랑 없는 모든 것, 자비 없는 모든 것을 규정한다. 우리의 경험은 스스로에 의해 해석될 수 없다. 우리는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신은 올바른 신이 아니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 (...) 적법하지 못한 자들, 가난한 자들, 비천한 자들의 믿음이었다. (p. 45)
세월이 흘러 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러,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마음으로 이 문장을 마주하니 말문이 막힌다. 눈이 멀도록 찬란한 카리브해의 햇살 아래, 그 무심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존재를 ‘사랑 없는 모든 것’으로 정의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삶. 누구나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산다지만, 수엘라의 세계는 유독 서늘하다. 지배자가 정해놓은 질서에 순응하거나 보이지 않는 구원에 기대어 삶을 버티는 사람들 틈바구니 너머, 자신을 설명할 단어조차 없는 암흑 속에 머물러야 했던 그녀에게 행복이나 안온함 같은 보편적인 가치들은 들리지 않는 먼 나라의 말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자신이 겪는 고통을 설명하려면 결국 지배자가 만든 단어와 논리를 빌려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고통을 말할수록 오히려 그것에서 멀어지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 분명 내가 겪은 일인데도, 내뱉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 낯선 기분. 이 막막함 속에서 수엘라는 지배자가 정해놓은 해답(사랑, 신, 구원)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기를 거부한 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캄캄한 의식 속에 머물며 자신만의 비참한 진실을 응시하기로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 해석 불가능한 고통의 현장을 우리 역시 똑바로 바라보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이 물러섬 없는 태도는 결국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온기, 그 근원적인 결핍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조차 발뒤꿈치만 보여주던 어머니. 그녀를 향한 허기에 비하면, 세상의 비정함은 오히려 견딜 만한 것이었을까. 이제 나는 궁금해진다. 이토록 철저히 버려진 세계 위에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어머니의 ‘자서전’을 그녀가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 말이다.
사랑은 나를 무너뜨렸을 것이다.
사랑은 항상 나를 무너뜨렸다.
사랑 없는 분위기에서 나는 잘 살 수 있었다.
이 사랑 없는 분위기에서 나는 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p. 35)
삶에 없었던 사랑.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그 다정함을 찾아 헤매기보다, 끝내 그 결핍을 끌어안은 채 자신의 삶을 견뎌내는 수엘라. “나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p. 26)라며 되묻는 아득한 물음 앞에서는, 그녀에게 지독한 결기를 읽었던 내 마음이 무색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는 일흔 해의 세월을 통과해 온 노년의 수엘라가 서 있다.
“꼭 사랑받고 행복해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이 메마르고 질긴 상태로도 인간은 존재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수엘라의 생존 의지에서 서늘한 수긍의 지점을 발견할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을 덜어낼 수 없어 차라리 몸의 일부로 받아들인 누군가라면, “아, 내 삶에도 이런 해석 불가능한 구석이 있지.”라며 수엘라, 그리고 킨케이드와 마주해 어설픈 위로조차 끼어들 틈 없는 적막 속에 머물게 될 수도 있고.
어떻게든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자신을 들볶는 일에 지쳐갈 때, 오히려 지독하게 무심한 문장들이 차라리 서글픈 안심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킨케이드의 글을 읽는 동안 수엘라의 삶과 고통이 훑고 지나간 자리를 그저 가만히 응시했던 것 같다. 메마른 생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 삶을.
어떤 구원도 약속되지 않은 허허벌판 위에서 오직 자신의 숨소리에만 의지한 채 생을 지속했던 사람. 어쩌겠는가. 누구에게도 섞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그 지독한 무심함이야말로, 수엘라가 경계 밖의 생 위에서 자신을 지켜낸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끝내 그녀를 살아가게 만든 것은 구원이 아니라 부재였을지도.
”그저 그 얼굴, 내가 영원히 산다 해도 결코 보지 못할 그 얼굴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p.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