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화이트 타이거
곰돌이 2026/01/29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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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타이거
- 아라빈드 아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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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09-03-20
: 996
“나무바퀴가 덜그렁덜그렁 구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소 한 마리가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달구지 위에 채찍을 든 인간은 없었습니다. 물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게죠”
세상을 어깨너머, 백미러 너머,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짐작 치며 살아가는 한 남성은 오늘도 운전대를 붙들고 주인님이 오실 때까지 마냥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발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직업을 운전기사라고 말하기에는 하는 일이 12가지가 넘는다. 날개가 있어도 날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다. 그는 하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시작과 희망이기보다는 견뎌야 할 하루와 가까운 삶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주인의 비위는 어찌나 잘 맞추는지 샘물이 졸졸졸 내려오듯 하는 발람의 능글맞은 태도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인도 상인 집단이자 최대 부자 가문 중 하나인 파르시 집안 출신인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는 그의 저서인 <적절한 균형>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존엄한 삶이라 하면 통제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삶이 먼저 떠올려진다. 주인에게 예속된 발람의 인생살이는 딱 이와 반대의 삶이라 말해야겠다. 식민 지배를 거쳐 인도의 비극적인 현대사에 대해서 대부분 조금씩은 알고 있기에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궁금하다? 그렇다면 발람이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멋들어진 인생이 뭔지 상상조차 못 하고 사는 사람들이 왜 가림막에 가려지고, 왜 갇혀만 지내고, 언감생심 벽을 부수고 달아날 생각을 못 하는지,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대신에 내일의 희망을 바랄 만한 일이라든지 고단함에 환기가 되어줄 만한 기분이 삼삼해지는 이야기 따위는 기대하지 말란다. 고래들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소리만 나니 뭘 바라지 않는 게 상책이고 괜한 엄한 일이나 안 생기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이라도 할 판이라며... 그나마 깨알같은 쾌락이라면,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주인님의 얼굴을 찰싹 때려보는 것?
모든 걸 빨아들이며 살아온 동안 가슴속에서만 문드러져 있던 심정을 담은 말 속에는 가시가 날카롭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 어차피 알려줄 거면 제대로 알려줘야지! 어설픈 건 딱 싫고 가방끈이 길지는 않아 어려운 말은 몰라도 대신에 밥숟가락 들 줄만 알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제대로 까발려주겠다며 다짐이라도 한 듯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오는 거친 욕설이 섞인 유머와 함께 한이 서린 울분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하얀 거품이 일어날 만큼 콸콸콸! 그가 버텨낸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통을 깊은 숙고로 경감시키며 그날의 하루를 맞이하였을 거라는 것이다. 불행에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발람이 그리 순진한 사람인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극단적 불균형과 불평등이 낳은 구조적 문제에 인과 관계를 따지며 시간을 죽일 여유가 없는 발람은 그저 하인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도 빛으로 반짝이는 저 높은 곳을 갈망한다.
발람은 주인님의 부름에 따라 목적지로 가기 위해 빵빵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리며 시도 때도 없이 길이 막히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과 똑같이 가다 멈추다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차 문을 두들기며 구걸하는 사람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도로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눕기라도 할 것 같은 가냘프고 나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도로의 혼잡과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폐쇄된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유일하게 아들을 학교에 보냈던 아버지와 발람을 생계 수단으로만 여기며 착취를 일삼았던 할머니, 그리고 줄줄이 땟국이 흐르는 가족들까지도.
만담꾼처럼 너불너불 털어놓는 말에 초반에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지만 점점 갈수록 차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욕망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욕망을 누르기 위해 도대체 얼만큼의 자제가 필요했을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몸에서 사리가 나올 지경이지만 눈치 아홉 단 발람은 영리함을 발휘하며 지극정성으로 주인님을 모셨다. 사타구니를 긁던 손으로 요리하는 모습에 마님께서 기겁하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의식 없이 하는 습관도 고치고, 생전 처음으로 치약을 사서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리고 서서히 발람은 타인(주인님)의 사소한 생활 방식을 습득해 가며 따라 하기 시작한다. 같은 가격이라면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이 더 그럴싸해 보였던 자신의 취향 대신 주인님의 취향을 따라 단조로운 디자인을 고르면서 말이다. 타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단순히 삶의 태도에 변화만 주는 것으로 그칠지 아니면 한순간에 삶을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발람은 치욕적이면서도 악의적인 행위를 참아내고 불합리한 일에 휘말려도 조용히 항변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내 식구들이 전부 다 그렇게 살아왔다. 원망하기 보다는 허약한 이들을 바라보며 연민에 압도된 채 살아왔을 것이다. 민감한 촉수를 세워 올려다봐야 하는 이들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 바빴을 테니 말이다. 그랬던 그가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내린 결정과 그로 인해 벵갈루루에 정착한 북부 인도 출신의 기업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엿보는 동안 생각이 깊어지고 씁쓸함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씁쓸함이 오히려 이야기의 현실성을 단단하게 붙잡아준다. 그럼 나는 왜 씁쓸함을 느꼈는가를 생각해본다. 단순히 측은함을 느껴서였을까? 기회와 자유의 차이일 뿐, 우리 사회에도 자본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갖게 마련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으로 뒤틀린 본성이 스스로 택한 결정에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마다 마을의 모든 남자들은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찻집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버스가 도착하면 그들은 올라탔지요. 버스 안을 가득 채우고, 난간마다 매달리고, 천장까지 기어 올라가, 가야를 향해 떠났습니다. 가야에서 이들은 기차역으로 가, 기차로 몰려들었습니다. 기차 안을 가득 채우고, 난간마다 매달리고, 천장까지 기어 올라가, 일거리를 찾아 델리, 캘커타, 그리고 단바드 등지로 떠났습니다.- P43
제 아버지의 등뼈는 매듭을 지운 로프, 그러니까 마을 우물에서 여인네들이 물을 짓는 데 쓰는 로프였고, 목 주위를 휘감고 있는 쇄골은 마치 개 목걸이마냥 불쑥 튀어나왔으며, 꼭 채찍 맞은 자국처럼 살갗을 뒤덮은 베인 곳, 흠집, 흉터 따위는 가슴과 허리를 거쳐 저아래 엉덩이의 좌골에 이르기까지 뻗쳐있었습니다. 가난한 자의 인생은 날카로운 펜으로 온몸에 쓰여 있지요.- P44
인간답게 사는 것, 그건 미스터리였지요.-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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