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날.
나에게 전달 되어진 양장노트 한 권.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아서 였을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영원할거라 여기듯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절망의 가까움.
그것이 쓰게 만들었을까?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아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그 많은, 모든 것들을 들려주기엔 어느 하나도 빠트려질 것이 두렵고 아쉬운 마음이 쓰게 만들었을까?
가벼운 무게 만큼이나 힘없이 흘려서 쓴 기록들을 보니 피하고 싶었던 ‘그 날‘이 다가오고 있던 것이였음을 가늠하며 그 순간 목구멍에 슬픔의 덩어리로 목이 메여 차마, 더는 읽지 못하고 덮은 양장노트를 가슴에 품고,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은 그 날들‘을 난 알아야 했기에, 알고 싶기에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었다.
두 눈 위로 펼쳐진 정사각형 때론 직사각형의 천장이 늘 마주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것처럼, 나의 세계인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지냈을 그 ’비참함‘으로 농축된 나날을 겪었던 이들, 아니면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누군가들에겐 와닿을 수 밖에 없는 그 깊게 박힌 감정들을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시베리아 여행 중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래도록 누워 지냈다고 한다.
한 시절을 잘 건너왔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슬픔과 절망이 배인 씩씩함이 느껴졌다. 바랄 수 없는 것들을 결국엔 내려놓을 수 있게 한 용기를 다시금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정말 죽도록 노력했을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기록하지 못할 수 많은 날들의 좌절과 고통만큼, 죽도록 노력했으므로, 그렇게 했기에 다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P. 20) 매번 돌아오는 봄이 지난날의 봄이 아니듯이. 매번 돌아오는 꽃이 지난 계절의 꽃이 아니듯이. 언어적 문맥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날아오는 순간을. 그렇게 자기 개시의 순간이 활짝 펼쳐지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오래된 의미의 그늘을 지워내고. 한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추론의 언어로 다시 움직여가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새로운 봄이고 새로운 꽃이다. 언제까지나 어리둥절한 채로.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바라보면서. 오늘 나는 다시 봄을 모른다. 오늘 나는 다시 꽃을 모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다시. 꽃의 또 다른 이름 앞에서 문득 울게 될 때까지.
켜켜이 쌓아가는 삶 속, 행복과 불행의 무게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행복에 가려진 그늘과 불행이 막아놓은 빛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균형을 이루려고 할때, 오롯이 나의 생각에 집중했던 그 찰나를 기억하게 해주는 음악이 있다. 과정의 고통과 회복의 기쁨을 모두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책을 읽을 때 그 책과 어울릴만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읽는다. 그럼, 그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 나올 때,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도 어슴푸레 느꼈던 감정의 조각 조각들이 떠올려지곤 한다.
그렇기에 그 책을 기억하고, 그 음악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니 난 늘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으니까.(이 책을 읽을 때는 “Wilhelm Kempff”의 연주를 들었다)
(P. 57) 애초에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니까.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오고 있는 타고난 울음을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진동을 통해 내 속에서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것이니까.
(P. 61) 노랫말과는 무관하게 어떤 인물을,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는데, 이것들은 아주 모순적이게도 바닥의 어둠과 천상의 환희를 동시에 품고 있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런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환한 빛에 이를 수 있는지, 어떻게 그 희미한 불빛으로 어둡고 지친 누군가를 건져 올릴 수 있는지 묻는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죽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내게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느냐고, 나는 묻는다.
늦은 새벽에 듣는 음악에서 타고 흘러오는 ‘그 때의 기억들‘이 있는 사람들의 말해질 수 없는 ‘그 슬픔’을 담고 있어서 좋았다.
어떤 책은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싶게 하지만 어떤 책은 그 사람의 인생을, 생각을, 내 삶에 덧대어 정리되지 않은 솔직한 내 감정들과 맞닿은 글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케 한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강요받지 않는, 요구하지 않는, 그래서 불편함 없이, 조바심 없이, 그녀가 보내는 따뜻한 손길에, 그 다정함에, 그 배려에 난 너무 좋았다. 때론 책을 읽다가 쏟아지는 낱말들에 길을 잃을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의 그릇이 다 담아내지를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측면으로, 이 책에서 나는 다정함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빛나는 낱말들이 천천히, 잔잔하게, 나와 속도를 같이 해주기 때문이다. 쉼표의 갯수만큼 천천히...천천히...
사람마다 흘러가는 시간이 다르기에, 창문을 열어 어두운 방에 빛을 들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는 속도가 다르기에, 그래서 그것을 알아주는 듯, 겪어봤기에 조금은 안전하게 일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던, 그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던것 같다.
(P. 77) 내 손목시계는 떠나왔던 곳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잊고 싶은 것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내 시간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제부터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과거를 향해. 우리가 있었던 곳을 향해. 우리가 놓여 있었던 빛을 향해. 어둠을 향해.
(P. 106) 어제의 너는 죽고 싶었는데 오늘의 너는 내일을 계획하며 한줄 더 써내려간다. 작고 희미한 가능성이 되어. 이 봄의 새싹은 녹색이 아니라 검정이라고 쓰면서.
이 책을 소중한 사람들 머리맡에 놔두고 싶다.
잠들지 못하는 힘든 밤, 위안이 되어줄만한 당신이 좋아하는 곡을 들으면서, 이 순간만큼 이라도 아무 부담 느끼지 말라고.
고요한 이 새벽을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 못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렇게 놔두고 싶다.
다시 빛나는 얼굴로 만나자며.
(P. 224) 도착하는 순간에야 알 수 있는 것을, 그 무엇을 기다리면서. 매일의 책상 위에서. 삶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흐릿한 믿음에 의지한 채로, 모든 순간을 다시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알고 있는 이름을, 얼굴을, 표정을, 색깔을, 소리를, 거리를, 공간을 잊고. 마치 처음 본다는 듯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손가락과 심장으로. 순간속에서 순간을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