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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님의 서재

부엌 머리에 딸린 찬마루 밑은 온통 시커먼 분탄 더미여서 부엌 바닥까지 새까맸지만 무쇠솥 뚜껑은 반질반질 참기름을 발라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찬마루 위는 다리가 부러진 밥상, 금간데를 양회로 때운 항아리, 밑이 반쯤 빠진 체, 시루, 바가지, 양철통, 궤짝 등이 꾀죄죄하고 귀살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든것들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우리는 막장에 갇힌 광부처럼 희망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부엌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P15
아침저녁 석탄 가루로 수제비를 떠야 하는 올케나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끔 눈만 빤작이는 얼굴을 마주 보고 허파 줄이 끊어진 것처럼 허리를 비틀고 한없이 웃어제끼곤 했다.- P21
그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게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렇게 잘나 보이던 오빠가 너무 보잘것없이 누워 있었다. 오빠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럼 돌아온 게 아니지 않나.- P24
"모든 병은 나을 때가 돼야 낫는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숨 섞인 엄마의 이런 탄식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의 자책과 시간의 치유력에 대한 절절한 기도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P41
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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