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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소님의 서재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김원영
  • 16,200원 (10%900)
  • 2018-06-15
  • : 13,294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장애인인 줄 알았다면 부모들이 다른 선택을 했을거라는 선택으로 시작한다.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들은 장애인으로 태어날 지 몰랐기 때문에 낳았고  만약 알았다면 안 태어나도록 했을터니 장애인은 자신의 손해와 불편에 앞서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심한 손해인지 아닌지를 먼저 물어야 되는 것이다.

일명 '잘못된 삶 소송'


  장애인이 자신이 가진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거두었다는 언론의 뉴스에는 속물성이 있다. 속물에는 사람의 위치에 위계를 정하고 장애인이 비장애인도 따내기도 힘든 어려운 성취나 사회적 위치를 차지했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며 3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자신의 아이와 변호사가 된 우영우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아이의 장애는 왜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못했는지 슬퍼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책은 실격당한 자들을 변론한다. 어제처럼 아무런 악의없이 상대가 던진 말에도 아파하는 나처럼, 순식간에 자신의 존엄과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도 사회적 상호작용 때문에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한 사람들에도 저자는 변론한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욕심은 있을 수 있지만, 상처받지 않은 삶은 불가능하다. " 완전하지 못하고 상처를 감추고 연기를 하며 보여지는 모습에 충실한 사회적 삶을 살아가던 순간, 이 가면이 문득 자신의 본감정과 타인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순간이 온다면 자신의 삶과 개별적인 서사를 드러내야 한다. 물론 비아냥과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하겠지만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수용하고 그 삶을 성찰한 자가 가지는 묵직한 온기와, 인간의 존엄을 깊숙이 던져준다.

  존엄이란 권리처럼 발명되어야 할까? 

존엄의 가치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써내려가는 그 순간들에 깃들여지는 숨결이 아닐까?

‘뇌성마비‘라는 별명. 그리스어 ‘아테토시스athetosis‘에서 온 이 말은 그렇다면 일생동안 나를 따라다닐까? ‘통제된 장애‘를 가리키는 이 명칭은 내겐 아무 효과없는 명칭일 뿐이다. 그 말이 포괄하는 범위도 너무 넓은 데가 거의 이해할 수도 없는 명칭이니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 신속하게 내려진 진단은 바로 자유를 상실하게 한다....... 숱한 시선 속에 이뤄지는 이런 식의 축소는 무거운 중압감으로 그 사람을 짓누르고, 그의 개별성을 말살하고, 은밀한 상처를 벌려놓아 아물지 못하게 한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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