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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21 12:42  좋아요  l (0)
  • 로는 당시 정치신학 논쟁에서 1. 사도전승에 근거한 잉글랜드 교회의 권위 및 질서와 2. 왕권신수설을 방어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하노버의 조지 1세에 충성을 거부하고 옛 스튜어트 왕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고수한 것은 그런 논리의 연장에 있는데, 이걸 신앙 양심이라는 한마디로 해설하는 건 매우 무성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그런 표현이 자칫 로를 장로교,침례교, 퀘이커 등의 비국교도와 동일한 위상을 지닌 인물로 오해하게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기의 윌리엄 로는 (그의 반대편 논적들이 주장하던) ‘비가시적’ 진정성이나 (뵈메의 영향을 받은 후기의) 사변적 신비 대신 ‘가시적’ 교회 질서와 더불어 신앙 실천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  2026-08-21 12:19  좋아요  l (0)
  • 게다가 마지막 장의 기도나 시편에 대한 언급도 성공회의 전통과 관행을 모르고서는 피상적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고전의 추천사나 해설은 목사가 아닌 관련 교파의 성직자에게 맡겨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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