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으면서 츠바이크의 유려한 문체에 빠져들었다.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는 츠바이크를 만나는 네번째 책이다.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에 대한 관심보다는 츠바이크의 유려한 문체를 접하고 싶어서 이책을 선택했다.
1. 카사노바를 기억하는 이유
자코모 카사노바라는 희대의 바람둥이의 삶을 책으로 읽을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가 다른 바람둥이들 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사기치고 여자를 침대로 유혹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록으로 남겼다. 다른 바람둥이들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때, 자코모 카사노바는 불멸의 기록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세계적 작가로 평가받으며 그의 이름을 세상에 남겼다.
어느 보수논객이 회고록 쓰기 운동을 주창한적이 있다. 매우 타당한 주장이다.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겼기에 우리는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반면, 원균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순신의 눈에 비친 원균을 우리가 접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기억하려면, 기록을 해야한다. 자코모 카사노바는 이를 입증한다.
2. 스탕달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스탕달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다. 그런데, 그가 어떤 인간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스탕달의 삶에 대해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운이 좋아서 여러나라의 대사를 하면서 공무도 제대로하지 않으면서도 월급을 받아 챙기며 남는 시간에 책을 쓴 작가이다. 치열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소일거리로 글을 쓴 사람. 살아서보다는 죽은 이후에 작품으로 다시 기억된 한량이다.
그의 삶이 매력적이지 않기에 츠바이크의 유려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더욱이 그의 대표작인 '적과 흙'을 읽지 않아기에 그에 대한 흥미가 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듯한 느낌이다. 작가와 작품은 혼연일체이기에 작가를 이해하려면 작품을 읽어야한다.
3. 성자가 되고 싶었던 톨스토이가 측은한 이유
위대한 문호 톨스토이를 알면알수록 측은한 생각이 든다. 심지어 톨스토이가 "여자는 남자를 '육체의 죄악으로'이끈다."(215쪽)고 설교한 부분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에 대한 측은함이 더 높아졌다. 명심보감에 "색이 사람을 미혹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다.(色不迷人人自迷.)"라는 말이 있다. 어찌 여자가 남자를 육체적으로 죄악에 이끌까? 우리가 육체적 욕망을 원하기 때문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심지가 굳은 혁명가가 아니다. 미혹되기 쉬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여성을 핑게로 삼을 뿐이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측응해보인다.
톨스토이는 성자가 되고 싶었다. 순교자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그의 이러한 바램이 잘 나타나있다. 세상을 신의 섭리로 바꾸고 싶었다. 낮은 곳에 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용기가 없었다. 이를 실천하려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해서 가족을 내팽겨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글은 혁명가적 힘을 가졌고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톨스토이는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이를 방해한 인물은 바로 차르 니콜라이 2세였다. 그는 장관에게 말했다.
"부탁인데, 레오 톨스토이를 건들지 말아주시오. 나는 그를 순교자로 만들 생각이 없소"(296쪽)
도스토예프스키는 순교자도, 가난에 찌든 삶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을 체험하고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야했다. 반면, 레오 톨스토이는 순교자가 되고 싶고 가난에 찌든 누추한 삶을 원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없었다. 가족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차르도 그를 순교자로 만들지 못하게 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그는 가족을 떠난다. 가진것을 모두 버리고 예수처럼 낮은 곳으로 가려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가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신문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르는 곳마다 톨스토이를 예를 갖추어 대했다. 결국 아스타포부 역에 내려 역장의 배려로 역사 구내의 일층짜리 목조건물에서 쇠약해진 몸을 뉘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원하던 누추한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용기없는 성자 톨스토이를 비난할 수 없다. 신념과 실천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기도하기에 용기없는 성자 톨스토이에게 연민이 간다. 그래도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신념을 실천했다.
츠바이크를 통해서 세명의 인물을 만났다. 이들의 자서전을 직접읽지 못했고,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섭렵하지 못했기에 이 책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세인물에 대해서 어렴풋이 남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름의 큰 수확이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