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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밤중의 꽃향기
  • 레일라 슬리마니
  • 12,600원 (10%700)
  • 2023-05-23
  • : 316
레일라 슬리마니, 좋아한다. 소설 두 권과 인터뷰집 한 권을 읽었다. 이야기 만듦새가 반듯하다. 특히 <타인들의 나라>가 그랬다. 질질 끌지도 않고 휘몰아치지도 않고, 딱 작가만의 속도가 있다.

”나는 오브제의 진부함 뒤에서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었고, 그런 내가 좀 원망스러웠다.“(56)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작가가 미술관에서 하룻밤 보낸다. 혼자서!

저자의 속이 시끄럽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미술관에 하룻밤 갇히기 전의 최후의 만찬부터 아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편집자와의 만남부터 여명에 미술관을 나서기까지 끊임없이 조잘조잘거린다. 분량 고민을 했을까? 할 말이 넘쳐났을까 아니면 채우느라 애먹었을까. 어쨌거나 슬리마니는 자기 자신과의 수다로 종이를 채워갔고, 독자는 호기롭게 따라나섰다.

글쓰는 사람은 어떤 예술품을 봐도 결국 ‘글을 쓰는 자기자신’으로 돌아가나보다. 미술관을 하룻밤 동안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쓰기 충동’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사진을 찍었을까? 메모를 하면서 돌아다녔을까? 작가는 끝에서 모로코에서의 어린시절, 이슬람교, 이민자 정체성, 아버지가 겪었던 일을 돌아보며 글쓰기로 회복중인 스스로를 진단한다.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나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행복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151)

”역설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떤 장소에서 떠날 가능성이 있어야만 그 장소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142) ”나는 망명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강요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떠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찾고자 했던 것, 즉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 몇 시간이고 카페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를 파리에서 발견했다. 나는 이민자다.“(81) 다음날 동이 트면 떠날 수 있는 미술관에서 하룻밤쯤 감금되는 건 꽤 괜찮은 자유였지 않았을까.

“”신중함의 원칙“과 ”위험 제로“를 숭배하는 우리 사회는 우연을 싫어한다. 통제할 수 있다는 우리의 꿈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학은 상처와 사고의 흔적, 이해할 수 없는 불행, 부당한 고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95-96) 그리고 다음 장에서 금지된 행동을 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핀다. “아무도 내가 이러는 걸 모르리라.”(98) 그리고 그걸 글로 썼지. 위대한 작가들은 종종 문학이라는 퍼포먼스에 사로잡혀 사는 것 같다.

레일라 슬리마니라는 작가를 알아가기 좋은 책이었다. 이 작가의 발자취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봤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 작가가 몇 편의 소설을 더 출간했을 때 다시 <한밤중의 꽃향기>를 읽으면 흥미롭겠다. 우리의 작가는 아직 쓸 말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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