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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책방
  • 헌법의 순간
  • 박혁
  • 17,100원 (10%950)
  • 2024-07-31
  • : 3,003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감자와 고구마 같은 목을 꽉 채우는 느낌을 받았다. 헌법이라... 얼마나 딱딱한 내용일까? 그래도 알아야겠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바뀌었다. 그래, 하나의 인터뷰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부시는 9,11테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직접 등장하고, 자신이 취했던 대처에 대해 코멘트를 달았다. <헌법의 순간>은 이런 책이다. 헌법 조문에 둘러싼 인물의 어록을 보여주며, 저자 '박혁'이 코멘트를 달아준다. 친절하고, 현장감 넘치는 서적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대한의 '대'자가 나라를 통합한다는 의미인 것은 역사적 상식이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인 최남선은 1946년에 조선에 관한 다양한 상식을 담은 '조선상식문답'을 출간하는데, 거기서 대한의 '대'가 어떤 의미인지 밝힙니다."



해방 후, 나라를 건국하고 헌법을 제정할 때 국호를 정하는 일이 있었다. 여러 의원들의 자신만의 논리를 펼쳐가며 국호를 추천했다. 하지만, 의견을 좁히기란 쉽지 않았다. 35년간 지배당한 탓도 있겠지만, 새롭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은 예민하고도 남은 문제였다.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에 저자는 쉽게 독자에게 설명한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발췌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과거에 국민/인민 단어를 빼앗겨서 안타깝다는 사설을 본 적이 있다. 북한이 인민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인민을 사용하기란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야라도 헌법에 국민/인민 논쟁을 새롭게 해보자고 주장한다. 



"국민이냐 인민이냐는 논쟁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사는 다문화사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기본권 주체를 여전히 국민으로만 한정하는 것이 타당할까요?" 



이렇든 저자는 단순하게 건국의 아버지들의 헌법을 둘러싼 논쟁만 다루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저자가 헌법을 살펴보는 이유는, 과거에 제정된 헌법 속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읽어보자는 뜻이 필시 있을 것이다. 



국민/인민에 대해 조금만 더 논해보자면, 당시 유진오 의원은 인민이라는 단어가 미국 헌법에 있어서도 시민과 구별된다고 보았다. 단지 북한에서 인민을 사용하고 있다고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국민은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 우월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아주 적절하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좋은 단어 하나를 공산주의자에게 빼앗긴 셈이다." 



헌법을 둘러싼 건국의 아버지들의 고민이 엿보이는 기록이다. 



이뿐만 아니라, 3.1운동에 관한 논쟁도 있다. 헌법에 혁명이라고 해야 할지 운동이라고 해야 할지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제헌헌법은 제12조에 있는 종교에 관한 조문이다.



헌법 초안을 보면,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없고, 신앙의 자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모든 국민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를 존재하지 아니하며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다."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유진오 의원과 권승렬 의원이 아주 잘 설명해 준다.



"헌법에서 신앙의 자유란 다만 마음속에 있는 신앙 자유뿐만 아니라 예배의 자유 혹은 신앙을 전도하는 자유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신앙이라는 것은 심적 자유일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신앙하든지 다른 사람이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에 나타난 신앙의 자유는 신앙을 외부에 나타나도록 하는 그 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대국가에 필요 없어 보이던 '종교' 문제는 종교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의원들에 의해 큰 파장을 겪게 된다. '국교 금지', '정교분리'에 대한 문제였다. 우선 국교라 함은 국가가 다른 종교보다 특별시 여기는 종교라고 보면 된다. 즉, 국교 금지는 그런 특별한 종교를 두지 않겠다는 뜻이고, 정교분리는 국가 운영에 종교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자였던 장면 의원이 한 마디 한다.



"헌법을 기초하신 여러분께서 종교에 관심이 너무나 적으신 것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국민은 종교를 믿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고 국가는 상관 안 한다, 그뿐이올시다. 종교라고 하는 것이 국가에 얼마나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역할을 하는지 인식한다면 이같이 무관심하고 냉정하고 소극적인 법률을 제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장면 의원은 정교분리를 반대했다고 한다. 국가가 종교를 버려둔다면, 종교의 긍정적인 부분까지 없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장면 의원은 중세 시대의 종교 역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지켜야 할 보편 도덕규범으로서의 종교를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헌법의 순간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격렬하게 논의하고 결정한다. 강점기라는 어둠을 지나, 건국이라는 여명 속에서 의원들은 묘한 흥분감이 있었던 거 같다. 저자는 의원들의 어록과 헌법 조문을 가져와 독자에게 친절한 해설을 해준다.



이 밖에도 여성 문제, 세금, 교육 등 다양한 문제를 책에서 설명한다. 국회의사당 본 회의장 앞에는 제헌국회 동판이 걸려있다. 저자는 그들의 얼굴 속에서 묘한 기쁨과 뿌듯함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1948년 5월 31일에 촬영한 제헌국회 단체 사진은 국가의 출발을 알리는 사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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