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앤드루 H. 밀러는 『우연한 생』에서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을 인용한다. "누구나 수천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에는 그중 단 한 개의 삶만 살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때 만약 그 길로 갔더라면/가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을 통해 자주 후회에 도달한다. 진화심리학 쪽에서는 인간이 이런 후회를 자꾸 하도록 진화한 이유가 과거의 실수를 반성함으로써 미래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그런 개체가 더 잘 살아남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런 실용적인 설명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살아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데는 더 근원적인 동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187~188쪽)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레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앤드루 H. 밀러, 『우연한 생』, 방진이 옮김,지식의편집,2021,29쪽
김영하 작가의 내밀하고 진솔한 가족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인생의 순간들은 동년배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나의 이야기인가 싶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혹은 그 때 그 순간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가 살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삶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지나간 삶은 이미 내가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영역 밖의 일이므로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임을 이미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혀 애달파 하지도 않는다.
앤드루 H. 밀러의 문장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만 나라는 "존재의 이 한없는 가벼움"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고 그래서 "더는 단 한번의 삶이 두렵지 않"음에 감사하게 된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에서 나도 위안을 받는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몰랐기에 전혀 애통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위안이다." (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