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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어 반짝이는

"내가 말한 A 아씨는 다른 말로 하비셤 아씨란다, 선생. 아씨는 나에게 ‘가저리 씨, 당신은 핍 군과 서신을 주고받겠지요?‘ 하고 물었지. 너에게 
편지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어서 나는 ‘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었지. (자네 누나랑 결혼할 때는, 선생, ‘네, 그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A 아씨에게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어.) 그러니까 A 아씨가 ‘그렇다면 에스텔라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번 만나겠느냐고 물어보세요‘ 하고 말하더군."- P341
나는 매형을 쳐다보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이유 가운데에는 매형이 찾아온 이유를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조금은 있기를 나로선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P341
매형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계속 말했다.
"이제 나는 자네가 앞으로 잘 지내며 계속 번창해서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길 바랄 뿐이네."
"설마 지금 떠나려는 건 아니죠, 매형?"
"아니, 그럴 거네."
"그럼 다시 와서 점심을 들 거죠, 매형?"
"아니, 안 그럴 거네."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사나이 마음에서는 ‘선생‘이란 용어가 모두 사라지는 가운데 매형이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P342
"핍, 오랜 친구, 인생살이에는 다양한 구분이 있다고 말하고 싶네. 어떤 사람은 쇠를 다루고 어떤 사람은 양철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황금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구리를 다루지. 인생살이에는 이런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오늘 실수가 있었다면 모두 내가 잘못한 거야. 자네와 나는 런던에서 만나면 안되는 사람이야. 우리만 아는 은밀한 공간 밖에서는, 친구들이 이해하는 공간 밖에서는 만나지 말아야 할 관계. 앞으로 자네는 이런 옷차림으로 나를 두 번 다시 못 만날 텐데, 그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서로 올바른 자리에 있길 바라기 때문이야.- P342
나는 이런 옷이 안 어울려 대장간과 주방과 습지를 벗어나는 것도 안 어울려. 내가 대장간 옷차림으로 손에 망치를 들거나 파이프를- P342
든 모습은 지금만큼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 거야. 
가령 네가 나를 보고 싶어서 집으로 찾아와 대장간 창문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거기에서 대장장이 조가 불에 그슬린 앞치마 차림으로 오래된 모루에 망치질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지금처럼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겠지.
나는 끔찍하게 우둔하지만, 오늘 여기에서 내린 결론이 올바르길 바란다. 그러니 너에게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길, 오랜 친구, 우리 핍.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길!"- P343
ㅈ내가 매형에게서 티끌 하나 없는 위엄을 발견한 건 착각이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는 동안 매형 옷차림도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의상 같았다. 하지만 매형은 나에게 다가와서 이마를 살짝 매만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밖으로 급히 쫓아가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매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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