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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어 반짝이는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 ‘불속의 원‘과 인간본성에 대하여...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인데 자그마치 31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eBook으로 읽고 있는데 종이책의 두배 정도인 1,45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다.
수록 작품이 31 편이라는 것, 1,45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에 압도당한 마음과는 달리 일단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금방 빠져 들어 읽어나가게 된다. 작품이 주는 몰입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게 될 만큼 비범한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을 여럿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원래 악한 것이 아닐까 ... 그런 생각을 굳히게 만들다니... 플래너리 오코너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가히 최고가 아닐까!

오늘은 단편 중 ‘불속의 원‘, ‘추방자‘를 읽었다.
안좋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 스토리인걸 분명 알 수 있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어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불속의 원‘을 읽을 때 특히 그랬다.
어린 딸(아이)과 함께 사는, 농장을 운영하는 코프 부인 집에 예전에 일했던 일꾼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가지고 친구 두 명과 함께 찾아온다.
소년들은 코프 부인의 호의에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코프 부인의 농장에 눌러 앉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태는 코프부인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그들을 내보내기 위해 애쓰지만 사태는 점입가경의 지경에 이른다. 농장에서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코프부인은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안심을 하는데... 어느 날 코프 부인의 어린 딸이 숲에 들어갔다가 세 소년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숨어서 지켜보던 중에 모아놓은 성냥으로 숲에 불을 지르는 모습을 발견한다. 농장과 농장 건너의 숲은 코프부인의 경작지이지만 소년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농장의 동물들을 풀어놓고 함부로 말을 타고 돌아다니고 우유를 훔쳐먹기도 하는 등 온갖 말썽을 일삼는다. 어린 딸이 있는 엄마인 코프 부인은 그런 아이들을 집에 들일 수 없을 뿐더러 같이 데려온 친구들도 고분고분하지는 않아 불안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건초창고에서 잠을 자겠다는 것을 거절하자 숲에서 노숙을 하겠단다. 건조한 계절이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숲에 들일 수 없다는 코프 부인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비행을 일삼는다. 이렇게 결국 아무렇지 않게 숲에 불을 놓는, 파국을 향해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듯한 이 작품을 읽다보면 역시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단 것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그들은 옷을 입었다. 햇빛이 파월의 안경에 하얀 점 두 개를 찍어서 눈을 가렸다. 
"나는 할 일을 알아. 이제 하자." 파월이 말하고 주머니에서 조그만 물건을 꺼내 두 소년에게 보여 주었다. 그들은 파월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1분은 족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제 의논은 다 끝났다는 듯 파월이 여행가방을 집어 들었고, 모두 일어나서 아이와 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이제 나무에서 뗀 아이의 뺨에는 나무껍질 무늬가 붉고 흰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501/1453)
아이는 소년들이 걸음을 멈추고 각자 가진 성냥을 모두 모은 뒤 덤불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소년들은 환성과 고함을 지르며 입에 손을 대고 두드렸고, 잠시 후 아이와 소년들 중간에 생겨난 가느다란 불이 점점 넓어졌다. 불은 아이가 보는 눈앞에서 덤불
위로 뻗어 올라 나무들의 낮은 가지를 집어삼켰다.
바람이 불어 불조각을 위로 실어 날랐고, 소년들은
비명을 지르며 불 뒤로 사라졌다.(501/1453)
아이는 돌아서서 들판 저편으로 가려고했지만 다리가 무거워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낯선 고통이 아이를 무겁게 
눌렀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달리기 시작했다.
(502/1453)
아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유유히 걸어가는 깜둥이들 너머 화강암 색깔의 숲 속에서 연기 기둥이 맹렬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이는 꼿꼿이 서서 귀를 기울였고, 멀리서 몇차례 기쁨의 함성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그소리는 마치 예언자들이 
불의 용광로 속, 천사들이 비워 준 동그란 원 안에서 춤을 추는것 같았다. (504/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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