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글이 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계속 버티고 글을 쓰는지는 희미하게 감이 잡힌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동반하는 작업이다. 애초에 이상적인 결과물을 상상하지 않고서는 글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특히 그렇다. 모든 영화 글쓰기는 자신이 본 영화를 닮고 싶어한다. 자신을 감동시킨 영화에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 글쓰기도 근본적으로 영화와 일치할 순 없다.- P7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마음은 찰나에 겹치고 이내 제 갈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끝내 멀어지는 이야기. 새벽녘 마법 같은 그 시간이 아름다운 건 그 완벽한 순간이 찰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 P9
예정된 소멸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웨스 앤더슨(혹은 아서)의 조언은 단호하다. "울지 말 것." 사라져가는 것을 연민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 <프렌치 디스패치> 마지막 호를 발간하며부고 기사를 쓰러 간 기자들처럼. - P23
언젠가 삶은 정지하고, 나의 세계도 끝이 난다. 누구도 시간을 피해갈 수 없다. 영화는 시간에 저항한다. 그렇다고 죽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건 아니다. 과거를 기록하는 도구와도 다르다.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매혹은 끊임없이 ‘지금‘을 생산하는 데 있다. 무수히 많은 ‘지금‘들의 연결은 끝내 시간의 흐름마저 지워버린다. 모든 것이 바뀌는 중이다. - P25
내러티브 영화에서 시간이란 고개를 젖혀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재구성하는 일종의 인과 작업이다. 현실에서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이야기는 인과의 완결된 세계 안에 갇혀있다. 영화는 그렇게 완성된 세계 안에 시간을 가둬왔다. 그러나 일상의 어느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현실감각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과관계란 뒤돌아보는 시점으로부터 결정되는 얇고 가는 실에 불과하다. - P32
서사에 길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 과거, 혹은 미래의 시점에서 지금 이 순간을 해석하곤 한다. 때론 너무 많이 아는 게 문제다. 이야기라는 평행 세계의 감각을 거꾸로 현실 영역까지 가져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점찍은 사건 사이로 수많은 가능성이 빠져나간다. - P34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전부를 알지 못한다는 걸. 우리가 볼 수 있는 건겨우 손전등 하나, 한 사람의 시선 분량의 시대다. 그거면 충분하다. 애초에 인간이 신의 시점으로 역사를 조망할 필요는 없다. 그건 신의 몫으로 남겨두라. 한 사람이 겪는 하잘것없어 보이는 일도, 아니 그거야말로 영화가 사랑해 온 대안의 역사다. 그 사건이, 그들이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는 카메라들의 힘으로 영화는 세상의 일부가 된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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