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바나 다카시는 1940년에 태어나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수재로 졸업 후 주간문춘이라는 잡지사를 다니다 2년 만에 퇴사, 그 해 도쿄대학 철학과에 재입학한, 딱 봐도 괴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천재타입의 인간이다. 좀 더 황당한 얘기를 해주자면, 이 사람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책으로 가득 채운 빌딩 한 채를 갖고 있다. 벽면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지하 1층, 지상 3층 총 4층에 걸쳐 타치바나 다카시가 읽은 책 수만 권이 보관되어 있다.
이 사람에 대한 감탄은 읽은 책이 많다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의 저작들을 살펴보면, '일본공산당연구', '원숭이학의 현재', '뇌사', '거악 vs 언론',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우주로부터의 귀환' 등 역사, 사회, 철학에서 생물학, 뇌과학 그리고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써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분야들은 단순히 한 분야를 파해치다 보면 그 주변의 것들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이른바 '연계 학문'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완전히 독립된 분야여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전 인생을 걸고 공부해야만 하는 것들, 그 중에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난해하고 까다로운 전문 분야인 것이다.
한 인간이 이 모든 지식을 섭렵하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면 거기에는 두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천체물리, 고전역학, 분자생물학, 열역학, 역사, 철학, 사회, 교육, 법학, 의학, 인류학 등 세상의 모든 지식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추론해 터득할 수 있는 기초 학문을 각각 A4 다섯 매 이내로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태어날 때 부터 갖고 있었거나, 보통 사람보다 열 배는 느린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가정 말이다. 얼굴이 심하게 못생겼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계인이나 괴물 따위를 가정해 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인간의 형태와 비슷하기에 이 같은 가정은 제외 하겠다. 대신 그의 지식 탐구 과정을 조금 더 살펴 보기로 하자.
이 남자는 자기가 맡은 일이라면 어떤 분야이든 상관없이 먼저 그와 관련된 책 수십권을 읽고 시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원숭이학의 전문가와 대담이 잡혀 있다면 원숭이학 자체는 물론 생물학, 동물학 등 관련된 분야를 적어도 큰 그림만큼은 정확히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선행 학습을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읽는 책을 쌓아 올리면 1~2m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시작할 때니까 그 정도지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어 책이라도 쓰게되면 하나 둘 씩 쌓인 자료와 책이 산을 이뤄 매번 그 자료를 보관할 아파트를 새로 임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도쿄 한 복판에 우뚝 솟은 고양이 빌딩은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어느 괴짜의 허영이 아니라 오직 필요에 의한, 필요를 위한, 필요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많은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을까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일부는 '전부 읽었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읽었다'라는 말에 대한 정의를 각각 다르게 내리는 한 이러한 논쟁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목차, 도입부의 수십 페이지 혹은 각 단락의 첫 문장만 읽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상 서문에 전부 써있으며 각 단락의 중심 주제는 주로 첫 문장에 제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책 한 권을 십분만에 읽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책 뒤 쪽의 색인만 있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단순 정보를 읽는데 수 시간을 할애하거나 더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을 꾸역 꾸역 읽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단 하루 만에도 우리가 공들여 읽어야 할 보물같은 책들은 수천 권씩 생겨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렇게 진화하는 지식의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니 될수 있는 한 몸을 가볍게 해 광범위한 지식 세계를 두루두루 탐험해 가자는 것이 타치바나 다카시 독서의 핵심인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역시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된다. 핵심은 지식이 형성하고 있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지 지식 자체가 아니다. 예전에는 어느 내용이 어떤 책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 기억하는 게 지식인의 척도로 여겨졌지만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암기란 구시대적 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그 두껍고 지루한 책을 덮어 버리는데 주저하지 말라. 머뭇거리기엔, 우리가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멀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저자의 독서사(史)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에서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나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가 '독서'에 관해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 혹은 강의 기록의 모음이다. 그래서인지 형식과 주제가 다소 산만한 면이 있다. 정작 듣고 싶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대한 대답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인터뷰로 수록되어 있지만, 그의 독서법을 받아들여 후루룩 읽어 치웠으니 그 내용은 스스로 상상해 보시라.